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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백년을 살아보니

by mariannne 2022. 12. 28.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저 | 덴스토리(DENSTORY)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대단히 재미있어 여러 번 웃었다. 이 책을 쓴 김형석 교수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다. 1920년에 태어났으니, 이 책을 낸 2016년에 우리나이로 97세인 김형석 옹. 2023년이면 104세다.

이 책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지인들과의 일화, 인생론 등을 쓴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박정희 시대를 지낸 분이고 기독교 신자라 보수적인 성향에 읽기 거북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90대 후반의 할아버지답지 않게 합리적이고 세련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연세에 직접 손으로 글을 썼다니 놀랍다. 인생은 정말 살아봐야 아는 것이라 하는데,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라고 말하는 90대 후반 어르신의 말이 믿음직스럽게 들린다. 


책 속 구절: 
모든 남녀는 인생의 끝이 찾아오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 있는 고생이다. 사랑이 없는 고생은 고통의 짐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 인생이다. (p.96)

80대 중반쯤의 일이다. 
안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더 늙기 전에 셋이서 1년에 네 번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만나 차도 마시고 식사나 같이 하는 시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김태길 선생과 상의해보라는 청이었다. 나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뜻을 김태길 선생에게 전했다. 전화를 받은 김 선생이, "글쎄, 좋은 생각이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또 다른 생각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셋이 다 80대 중반인데, 가는 세월이야 누가 붙잡을 수 있겠어요. 누군가 한 사람씩 먼저 떠나가야 할 텐데....... 가는 사람이야 모르지. 그러나 다 보내고 남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어. 그저 지금같이 멀리서 마음을 같이하면서 지내다가 차례가 되어 떠나고 보내는 편이 좋지. 늙어서 다시 정을 쌓았다가 그 힘든 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라면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견이었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안 선생도 "그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우리가 너무 늙었지?"라고 말했다. 그 후에는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했다. 그런 예감이 있었을까. 김태길 선생이 먼저 89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뒤이어 안 선생도 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93세로 나만 남기고 떠났다. (p.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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