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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7

흑산 黑山 흑산 黑山 김훈 저 | 학고재 이것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먹고, 일하고, 세금을 내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고, 다투고, 화해하고, 믿고, 배신하고 ... 그렇게 살다 죽어가는 이야기다.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며 고향을 떠나고, 어떤 이들은 죽은 아이의 살을 먹으며 ‘죽여서 먹는 게 아니고, 죽어서 먹는다’고까지 하는데, 궁에서는 나라의 기강이 무너진다며 사학죄인을 잡아 족칠 생각에 여념이 없다. 불과 140여 년 전의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가볍고 하찮게 다루어지는 시절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따로 없다. 흑산으로 유배된 정약전이 주인공인가, 모르겠다. 정약전에게는 위로 형 약현이 있고, 아래로는 동생 약종, 약용이 있었다. 형제 중 맏이인 약현에게는 명련이라는 딸이 있어, 황사.. 2012. 11. 28.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저 | 생각의나무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개정판으로 김훈이 ‘한미한 초야에서 때때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을 모아 낸 산문집이다. 현역 판정을 받은 후 부모에게 평발을 내밀며 ‘재심’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아들에게 ‘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라’며,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며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p.20)고 말하는 사람이 김훈이다. ‘본래 시국과 관련된 정치적 언어를 입에 담기를 좋아하지 않는’(p.87) 그이지만, ‘파렴치한 권력투쟁’에 분노하느라 문장을 쏟아냈고, 조국 산.. 2011. 10. 24.
바다의 기별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짧은 수필 몇 편,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 두 편,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저자의 소설, 에세이 집의 서문들을 모아 놓은 책. 일상의 진지함과 완고함,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를 '여성 심리의 달인 마초 김훈 선생'이라 부르고 싶어진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팍팍한 삶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만한 착한 책이다. 책 속 구절 : 나는 춥고 어두운 흙구덩이로 들어가야 할 일이 무섭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의 무사한 하루하루에 안도한다. 행복에 대한 내 빈약한 이야기는 그 무사한 그날그날에 대한 추억이다. 행복이라기보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딸아이가 공부를 마.. 2009. 1. 27.
남한산성 남한산성 (김훈 저 ㅣ 학고재) 삼복더위에 병자호란의 매서운 바람을 읽는 느낌이 묘했다. 작가의 충분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추위가 팽팽하여 뼈마디가 얼어붙는 고통’이 먼 나라 얘기같을 정도의 무더위였다. ‘얼음의 힘이 빠지면서 얼었던 흙이 죽처럼 흘러내’릴 때가 되어서야, ‘구멍 언저리에서 냉이가 올라’올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한 남한산성은 임금의 출성出城으로 마무리가 되며 그제서야 단순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는 작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역사적 사건들을 자꾸 대입시키고, 옳고 그름을 따져보게 된다. 용기없는 수성守城은 늘 손해였다. 하지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당할지언정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자존심을 .. 2007. 8. 12.
언니의 폐경 :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언니의 폐경 :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ㅣ 문예중앙) “2005년 대한민국 최고의 소설!”이라는, 느낌표까지 붙은 카피가 좀 경박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수상작과 최종 후보작 리스트에 있는 작가들의 이름을 보니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상 문학상과 뭐가 다른 지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컴필레이션 음반 같은 즐거움을 주는 단품집이 자꾸 나와주니 고맙기만 하다. 김훈, 성석제, 윤대녕, 은희경, 하성란, 박민규, 김연수, 구효서 같은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니 말이다. 작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화장”을 읽고 난 후, ‘역시 연륜… 작가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상상력도 중요하겠지만, 남 얘기를 하자면 글을 쓰는 손이 불편할 것’이라며 주절주절 글을 남겼는데.. 2005. 12. 31.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저 | 생각의나무)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 하니 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 - 이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다들 가슴 한 구석에 사직서를 찔러 넣고 산다. 메신저 대화명으로, 또는 블로그 제목으로 ‘사는 게 극기훈련’이라거나 ‘인생은 버티기 한 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내심 극적인 변화 따위를 꿈꾸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독립된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 바로 ‘밥벌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김 훈이라서, 그리고 멋진 제목이라서, 또한 생소한 판형(어른 손바닥만하다)이라서 이 책을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다. 책 소개를 보니, ‘오랜 언론인 생활에서 얻.. 2004. 12. 26.
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김훈 저 | 문학사상사)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은 대개 점잖은 편에 속한다. 진지하고, 깊고, 묵직하며 약간은 차가운 느낌이다. 최근에는 최수철, 최윤, 윤후명, 은희경의 작품이 그랬고, 권지예의 “뱀장어 스튜”가 좀 달랐다. 28회에 빛나는 이상문학상 작품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늘 안심이 된다. “뭐 괜찮은 소설 없을까?”라고 묻는,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에게는, 일 년에 한 권, 이 책을 꼭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올해 대상 수상작인 “화장”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작가는 경험이 많아야겠구나, 하는 거다. SF작가가 미래를 살아본 적이 있냐며 반문해도 역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상상력도 한 몫.. 2004.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