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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by mariannne 2012. 11. 30.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저/안자이 미즈마루 그림/김난주 역 | 문학동네

 

확실히 이전보다는 하루키 호감지수가 떨어진 것 같다. "1Q84"도 남들이 열광하는 만큼 좋지는 않았다. 새로 출간된 에세이 걸작선 다섯권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권 사서 읽었는데, 이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 2, 3'(백암 출판사)보다 감흥이 떨어진다. 같은 내용의 글이면서, 제본과 편집 상태와 디자인은 훨씬 좋은데도 말이다. 이전에 나온 수필집 세 권을 소장하고 있어서 새로 나온 에세이 걸작선 다섯권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일일이 비교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는 일부 새로 추가된 글이 있다고 한다. 그의 글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친근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읽으면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 기운이 빠진걸까? 여전히 나머지 네 권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책 속 구절:

 

…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 이 두 가지는 인생의(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의) 양대 키워드이다. 경험으로 말하는데, 이 두 가지만 머리에 잘 새기고 있으면 인생의 시련 대부분을 큰 탈 없이 이겨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에서 숨을 헉헉거리며 플랫폼 계단을 뛰어올라갔는데 간발의 차로 전철 문이 닫히면 엄청나게 화가 난다. 이럴 때 ‘그럴 거지 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전철 문이라는 것은 대개 눈앞에서 닫히는 법이라고 인식하고 또 수긍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세계는 그 원칙에 따라가야 할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전철을 놓치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는 “그래서 뭐”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시간 따위 그저 편의를 위한 구분이 아닌가, 약속 시간에 이십 분 정도 늦는다 한들 미국과 소련 간의 핵무기 확장 경쟁이나 신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그래서 뭐’ 정신이다.
단 이런 사고방식에 기초해서 살면 마음은 편할 수 있어도 인간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 사회적 책임감이나 리더십 같은 것과도 완전히 연이 끊긴다. 혹여 핵전쟁이 발발하거나 신이 죽어버려도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내게도 다소 그런 경향이 있지만-그것도 문제는 문제다. 만사에는 적정선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p.88~89)

[…] ‘토끼정’의 크로켓 맛을 글로 표현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접시에 꽤 큼지막한 크로켓 두 개가 담겨 나오는데, 무수한 빵가루가 바깥쪽을 햫애 삐죽삐죽 튀어나갈듯이 박혀 있고,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배어드는 기름이 눈에 보인다. 이건 뭐 거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것을 삼나무 젓가락으로 꾹 누르듯이 잘라 입에 넣으면 튀김옷이 바삭 소리를 내고, 안에 든 감자와 쇠고기는 호르륵 녹을 것처럼 뜨겁다. 감자와 쇠고기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나도 모르게 대지에 뺨을 맞추고 싶어질 만큼 향기로운 감자-이건 절대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와 주인이 엄선해서 들여와 커다란 부엌칼로 자잘하게 다진 쇠고기다. 맛은 재료의 질과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아주 담백하고, 맛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수제 소스를 끼얹어 먹으면 된다. 큼지막한 사발에 담긴 소스를 숟가락으로 떠서 끼얹는데, 이 소스의 맛이 또 기가 막히다. 안에 잘게 썬 에샬로트가 들어 있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맛인데, 뒷맛이 전혀 남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나는 늘 크로켓 두 개 중 하나는 그냥 먹고 나머지 하나는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소스를 끼얹어 먹기에도 아까고 끼얹지 않고 먹기에도 아까운 것이 참 미묘하다. (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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