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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욕망해도 괜찮아

by mariannne 2012. 7. 6.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저 | 창비

 

김두식의 책은 처음인데, "불멸의 신성가족" "불편해도 괜찮아" 등을 쓴, 나름 유명한 필자인 모양이다. 저자 자신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과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듣보잡' 저자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색(色)과 계(戒)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심한 아저씨"인 저자는 지금까지 ‘계(戒)’의 세계를 지켜왔지만, 생각해보면 ‘색(色)’을 욕망했어도 좋았겠다고 말한다. 저자 가족의 역사를 살펴보니, 저자 자신은 '과도한 규범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고, '도덕적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긴 하지만, 사실 '욕망하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욕망하라. 그리고 욕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혹시 제목만 보고 이 책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된다면, 선입견을 접고 이 착하고 성실한 저자의 항변을 들어보는 게 좋겠다. 서문에서 “40대 중반에 이르는 저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이라며, ‘불면 혹 날아가는 나이가 불혹(不惑)’이라는 우스개를 인용하면서, ‘멘토가 아니라 여전히 자라는 과정에 있는 40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이 좋았다.

 

읽는 내내, 한때 유명했던 여성학자 오숙희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돈이 좋다"는 책이 생각났다. '돈'이나 '욕망'이나, 정말로 원하긴 하지만, 원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말하기는 싫은,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부자를 경멸하면서도 부자 되는 걸 마다할 사람은 없는 것처럼.

 

책 속 구절:

글을 쓰는 매체도 정확히 반대였습니다. 형은 글을 쓸 때마다 "너 경상도지?" 하는 욕을 먹고, 저는 반대로 "너 전라도지?" 하는 욕을 먹습니다. 결혼할 때도 형은 부모님의 반대를 정면으로 돌파했고, 저는 처음부터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똑같은 대학교수 직업이지만 형은 학과 안에서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는 주변사람들과의 싸움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봅니다. 함께 등산할 때도 형은 초반부터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고, 저는 늘상 천천히 가자고 애원하는 쪽입니다. 형은 입산금지 간판을 모른 척 지나치지만, 저는 그런 형의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형이 에스프레소를 더블샷으로 마신다면, 저는 최근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형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는 늘 안전한 길만 찾습니다. 형은 개를 사랑하고 저는 개를 무서워합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무의식적으로 제가 형하고는 정확히 반대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형은 일탈자로, 저는 도덕적 감시자로 역할이 고정되어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가족이나 비슷한 스토리는 있죠.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첫째인 누나는 어머니의 자궁을 처음 이용하면서 자신이 첫째임을 알고 여유와 안정감을 가졌겠죠. 특별히 투쟁적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인 형은 어머니 자궁에 자리잡는 순간 '어, 누가 벌써 다녀갔네' 하면서 첫째와의 치열한 싸움을 준비했을 겁니다.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걸 쟁취하기 위해 누구보다 잦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셋째인 저는 자궁에 자리잡는 순간 벌써 두명이 다녀간 상태임을 알았겠죠. 그것도 5년, 7년 전에 말입니다. 처음부터 상태가 될 수 없는 누나와 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 누구에게나 예쁘게 보이는 길뿐입니다. 투쟁은커녕 매사 최대한 조심스럽게 부모님 눈에 들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었을겁니다.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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