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팝니다: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저 | 퍼플카우
나꼼수 PD이자 출연자인 김용민의 ‘보수’론. 어린 시절부터 조선일보를 애독하며 소년보수에서 청년보수로 자라난 김용민은 보수 주식회사인 극동방송과 CTS 기독교 TV에서 일하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보수’의 실체를 보고 환멸을 느끼며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수를 지지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 나머지 이 책을 썼다. 책 제목인 “보수를 팝니다”는 대한민국 최고 히트상품인 ‘보수’의 ‘팝니다(세일즈) 전략’을 살펴보자는 것과 보수를 ‘파들어 가보자’는 의미다.
김용민의 “조국 현상을 말한다”를 감탄하며 읽은 나머지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논지를 너무 단순화 하다 보니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 좀 실망스러웠다. 저자는 일단 보수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거기에 ‘자본가 보수’라는 대마왕적 존재를 추가했다. 세 가지 종류의 보수는 다음과 같다.
1. 모태 보수(혹은 선천적 보수) :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아쉬울 게 없이 자라온 배경을 가진”(p.52) 보수
2. 기회주의 보수(혹은 후천적 보수) : “보수하는 다른 길, 혹은 아예 반대 편 길을 걷다가 어떤 계기에선가 급작스럽게 보수로 돌아선”(p.53) 보수
3. 무지몽매 보수(혹은 묻지마 보수) : “서민이나 빈민층에 속하면서도 맹목적으로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p.54) 보수
보수는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러워하고 진보는 자신의 논리를 맹신하는 모양이다. ‘진보’의 선두주자로 나선 김용민은 ‘무지몽매 보수’를 소개하면서 “이들은 빈곤한 삶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노예근성에 쉽게 물든다.”(p.104)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무지몽매 보수는 한마디로 욕먹어도 싼 사람들이다.”(p.105) “이들은 소박한 이익에도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다.”(p.107)고 하면서 이들을 “우리편(진보)으로 만들자”는 얘기를 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진보가 형편없이 평하고 무시해버린 '무지몽매 보수'가 진보의 설득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성찰하는 진보’가 되는 것인가?
김어준의 ‘동물적 반응 수준의 우(右)’ 라는 말처럼 김용민 역시 ‘보수’의 사고구조를 단순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 “이른바 보수단체의 이름을 걸고 마구잡이 폭력과 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의 사고구조는 단순하다. 이들에게서 염치나 양심을 찾기도 힘들다. 자신이 하는 일은 오로지 선이고 진리라는 생각과 맹목적인 믿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p.104)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오로지 진리라는 생각과 맹목적인 믿음에 빠져 있는’ 건 진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무지몽매 보수' 운운하며 그들을 ‘계몽’하겠다는 18세기 내지 19세기적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 책의 의도는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너무 무리수를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대한민국 보수에 대해서만 후벼파다보니 도대체 '보수'가 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는 점이 아쉽다. 또, 최근의 나꼼수 열풍이나 무상급식찬반투표, 이어지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수가 심판받았다고 했지만, 과연 그게 '진보'의 승리를 말하는걸까? 그건 현 정권에의 반발이고, 분노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조중동의 공세에도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으니, 이제 보수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층에서 아예 조중동을 보지 않기 때문에 기사 자체를 모르고 있는것 아닐까? 조중동을 보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그 신문을 신뢰하고 있을거다. 게다가 저자가 며칠 전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후보가 되셨다니… 그의 정체성은 중도보수인가? 혹 정치를 할 생각이었다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으로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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