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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by mariannne 2012. 5. 30.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저/한상연 역 | 부키 | 원서 : Were You Born on the Wrong Continent?


“무한경쟁의 미국과 여유만만한 유럽, 어디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 출판사에서 내세운 홍보 문구다. 그러게 말이다. 어디가 우리의 모델이 되면 좋을까? 이 책은 미국 시카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이 미국과 유럽(그 중에서도 독일)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며 어느 쪽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1인당 GDP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미국(2006년 기준 1인당 GDP 미국 44,155달러, 독일 35,270달러, 덴마크 40,702달러, 프랑스 36,546달러)에서 산다는 건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것일까?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 예컨대 미국이 한 명의 빌 게이츠와 인도 출신의 굶주린 거지 여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1인당 GDP만 놓고 보면 여섯 명의 거지는 덴마크의 토목 기술자보다 ‘더 잘 사는’ 것이 되고 만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이처럼 폭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식의 통계적 착시 현상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p.79~80)

게다가 미국의 GDP를 상승시키는 동력은 ‘삶을 즐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인은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무한정 이동하며, 대형 쇼핑몰에서 낭비하는 삶’(p.80)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유럽에서 노동자로, 중산층으로 산다는 건 연평균 노동시간 1500시간에 연간 6주간의 휴가를 보장 받는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어떤가. 연평균 노동시간이 공식적으로는 1800시간이지만, 보통은 2300시간을 일하고 있는데다가 더, 더 많이 일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워커홀릭 증후군’에 시달리다, 정리해고 되는 순간까지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다를 바 없다.

맞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의 중심지답게 우리 미국인과 다를 바 없이 바쁠 것만 같은 은행원들이 바글거린다. 그러나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나서는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승려들처럼, 그들은 시간 감각부터 미국인과 다르다. 숨을 고르고 싶으면 언제든지 일을 멈춰도 직장 생활에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은행원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으며 연간 2,300시간을 죽도록 일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미국인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 (p.127)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누리면서 삶을 영위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다가, 그 목표(일류대, 대기업, 넓은 집, 좋은 차, 고액 연봉 따위?)에 도달하지 못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학, 분노하는 사회는 이미 정상은 아닐 것이다. 적성과 상관 없이 모두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며, 졸업 후에는 겨우 직장을 잡고, 실직의 두려움, 또는 더 많이 일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주말도 없이 일하고, 퇴직 이후의 생활을 걱정하며, 삶을 영유할 여유도 없이 지내면서 책 한 권, 신문 기사 한 줄 읽을 시간도 없는 삶. 너무 심하게 말하고 있는걸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가의 문제보다 얼마나 많은 성인이 신문을 꾸준히 읽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교육 수준의 척도라는 게 내 지론이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교 졸업자에게 밀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신문을 꾸준히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글로벌 경제 속에서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교 졸업자보다 우위에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수가 많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신문을 열심히 읽고 열심히 투표한다면 훗날 몸에 밴 기술의 가치가 떨어져도 얼마든지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p.250)

독일에서는 신문 이외에도 책을 열심히 읽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3장에서 말했듯이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베를린, 본 등의 전차나 지하철에서는 20명 중 대여섯 명은 신문을 읽고 적어도 다섯 명 정도는 책을 읽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카고의 전철에서는 신문이나 책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강제로 손에 쥐어지다시피 하는 무료 일간지 “레드 아이(Red Eye)”조차 읽는 사람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p.251~252)

저자인 토머스 게이건은 시카고에 사는 직장인 ‘바버라’와 유럽 어느 도시에서 일하는 ‘이사벨’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누가 더 행복할까를 비교했는데, 읽다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이사벨에게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지만, 바버라에게는 노동 가치의 하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적 자본’이라는 말을 놓고 볼 때 이사벨은 ‘인간’이라는 측면이 강하지만 바버라는 ‘자본’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p.92)

이 책에서는 유럽 중에서도 '독일'의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저자가 직접 독일에서 얼마간 체류한 경험이 있기도 하고(사실 아주 짧다), 독일이 대국이고, 제조업 강국이며, 사회민주주의 국가이고, 신문의 나라, 환경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이야말로 유럽의 진짜 중심이라고 믿고 쓴 것이다. 

저자는 유럽이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렇다면 저자는 사민주의자인가? 그는 자신이 ‘결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인으로서, 애국자로서 미국을 사랑하지만, 유럽의 여유가 부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두 사회의 장점을 취한 곳을 어디 없을까?’라고 말하는 미국인이다. 그러니 책의 제목처럼,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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