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현상을 말한다: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김용민 저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나는 꼼수다”로 유명한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저작으로, 부제가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고 보니 일리가 있다. ‘지난 4년간 역대 유례없는 파행적 국정 운영을 해온 이명박 정부’(p.18)를 교체해야 마땅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저질러놓은 천문학적 국가 채무, 4대강 사업의 폐해, 구제역으로 인한 환경 재앙 등의 만난萬難을 극복하자면, 즉 “구멍 난 재정 메우고, 부실공사 성과물을 원점으로 돌리고, 거침없는 역병의 뒤꽁무니 붙잡으면”(p.23) 5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2012년에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은 ‘준비 안 된 진보세력이 정권을 얻었다가 2017년 또 다시 수구기득권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라 "차라리 집권 안 하는 게 낫다"(p.26)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2012년이 아닌 2017년을 위해, ‘기나긴 숙성과정’을 거쳐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설 후보는 누구인가. 일단 2007년 등장한 바 있는 손학규, 유시민, 정동영은 제외한다(각각의 이유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권력에 대한 의지를 밝히지 않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문재인은 일단 보류다. 따라서 2017년 ‘링 위에 오를’ 사람들은 김두관, 김문수, 나경원, 안희정, 송영길, 오세훈, 이정희, 그리고 조국으로 간추려진다. 저자가 이들의 어린시절부터 정치입문 과정, 정치인으로서의 활약에 대해 풀어 놓은 내용이 참 재미있다. 이장 출신의 ‘리틀 노무현’ 김두관, 사상 전환의 ‘변절자’로 불리는 김문수(김용민은 이에 대해‘좌파 탈피’가 아닌 ‘좌파 외연 확대’라고 ‘솔직히’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여성 정치인 중에 박근혜 다음으로 캐릭터 경쟁력을 갖춘”(p.76) 나경원, “영호남도 주목하는 충청권 지도자로서는 박정희 시절의 김종필 이후로 유일하다”(p.84)는 안희정, “안상수 시대의 ‘똥’을 치우느라 지금도 여념이 없”(p.87)는 인천광역시장 송영길, ‘이명박과의 교감’덕분에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를 강행하면서 시장 사퇴까지 해버린 오세훈(정치학박사 고성국은 오세훈의‘성정’에 대해 얘기했는데, 미화하자면 위기에 정면승부로 맞서는 것이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자기를 둘러 싼 비우호적 환경에 견디지 못하는 소아병적 행태라는 것이란다),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부담스러운 별 세계 독종'같은 첫인상이지만 실상은 한 불쌍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며 "이 세상의 사악함과 맞서 싸우려면 자신부터 먼저 단단하게 무장해야 한다"고 다짐했다는 이정희에 대해 소개한 후 이제 조국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제 3장 - 조국은 누구인가"편에서 먼저 '강남 좌파'에 대해 짚어보고, 조국의 강점과 기회, 약점과 위기에 대해 분석한 후 (그가 정치무대에 뛰어든다는 가정 하에) 향후 데뷔는 임명직으로, 그 후 서울이나 부산에서의 선출직으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라는 컨설팅까지 하며 "역사가 조국에게 부여한 응답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그의 답이 주목된다"는 웅장한 멘트로 마무리한다.
저자 말고 다른 사람들은 조국을 어떻게 얘기하는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는 "조국은 현실정치의 때가 끼지 않았다. 법학자로서 품격이 있다. 강자 중심의 사회구조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 아울러 더불어함께 사는 진보적 세상의 비전을 품고 있다. 한국 유권자가 꽤나 따진다는 '비주얼'도 갖췄다. 놀라운 부분은 보수언론도 조국을 경계는 하나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p.144)라고 극찬했고, 참여정부시절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낸 노희경은 "(조국이라는 이름부터가) 운명적인 이름이다"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리얼미터 대표 이택수는 "학자나 법관이 현실 정치에서 바로 대망을 품기에는 현실 정치가 워낙 복잡하고, 유권자들도 그러한 사람들에게 쉽게 표를 주지 않아왔던 역사를 생각하면 과거 전 대통령 김대중, 노무현이 그러했듯이 본전 생각하지 말고 '강남' 타이틀을 벗고 서민들의 아픈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p169)고 했고, "강남좌파란 소리는 말도 안된다"고 한 정치평론가 공희준은 "한나라당 때려 부수는 거 기대도 안 한다. 대신 민주당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기에 앞서서 당신 동네 부녀회부터 개혁하라. 그리고 서울대 먼저 개혁하라. 나는 지금까지 조국이 서울대에 대해서, 또는 자기 동네인 강남의 부녀회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문제제기 했다는 소식을 별로 듣지 못했다."(P.181)라고 쓴소리를 했다.
200페이지 남짓의 이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짧고 명확하다. 2012년이 아닌 2017년 진보가 집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진보진영의 스타' 조국 서울대 교수가 중심이 되어 뛰어주면 좋/겠/다, 는 것이다. 조국때문이 아니라, 전반적인 내용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식견과 말솜씨 때문에 이제부터는 김용민의 책이라면 계속 찾아서 읽고싶어질 것 같다.
책 속 구절:
금융, 전세, 가계, 물가, 주식, 대중 등 경제의 축들도 불안하다. 부동산경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금 미상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저축은행 도산, 서민용 임대주택 건설에 태만하다가 닥친 전세대란, ‘아쉬우면 집 사라’며 대출 제한을 완화해 자초한 가계(부채)대란, 뿐만 아니라 시장의 엄청난 유동성을 성장률 상승세 유지를 위해 방치했다가 맞은 물가대란, 외국자본의 먹잇감을 자처하다가 맞은 주식대란…. 그야말로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악재들이다. (p.19)
강준만은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실은 강남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내용은 이렇다.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벌은 물론 생활수준까지 강남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우파 정치인이어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포퓰리즘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적 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강남좌파라는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좌파'가 아니라 '강남'이어야 하며, 이런 이유로 강남좌파의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문제로 비판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은 반박했다. "강남엔 모두 우파만 있고 좌파는 모두 지방과 강북에만 있어야 하느냐"며 "중요한 것은 지역을 떠나 모든 좌파의 연대"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어 "비아냥 섞인 강남좌파보다는 문화좌파라는 말이 더 맞다"며 "지식인과 중산층 이상이더라도 하층을 지향하는 문화 좌파는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으며 그 역할이 있다"고 비평했다. (p.113~114)
'죽어라 일하라'라는 구호가 학교에서는 '죽어라 공부하라'로 치환될 수 있다. 교육 당국자들은 그 덕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 단위로 치르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최근 우리가 2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입 모아 말한다. 그러나 학업 스트레스가 전무하다시피 한 나라, 핀란드가 세 번 연속 1위를 차지했다면 그건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의 2등에 잿빛이 드리워진다. 사실 국가가 나서서 경쟁을 없앨 수는 없지만, 낙오자를 끌어안아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러나 MB 정부는 도저히 실적을 계량화할 수 없는 교육 분야에까지 경쟁의 원리를 억지로 도입했다. '성적 얼마 올리지 않을 경우 무능 교사가 되는 구조'가 그렇다. 물론 그들이 사전적 의미의 경쟁을 도입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p.121~122)
조국은 자신을 주목하는 이들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설정해야 옳다고 본다. 지지자에 둘러싸이기 싫은 정치인은 없을 것이나, 그것은 소인배되기에 딱 좋다. 이른바 '비지(비판적 지지)'의 지지기반이라면 행사하는 정치의 격이 높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p.132)
[...] 강남좌파란 거, 사실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예컨대 강남좌파란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표현이냐면 이 세상에 '여성친화적 성폭행'이란 게 있을 수 있나? '여성친화'건 '여성 비非친화'건 간에 성폭행은 성폭행인 거다.
좌파를 표방하건 우파를 표방하건 간에 강남 사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민나 도로보데스', 즉 전부 도둑놈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강남좌파란 것은 단지 집이 강남에 있기 때문에 강남자파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강남이 상징하는 어떠한 사회적 토대, 강남이 상징하는 어더한 구조적 틀을 인정한 다음에 뭔가를 하자는 사람들이다. 명색이 좌파라면 근본적인 모순의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개혁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강남좌파들은 그걸 건너뛰고 진보하자는 소리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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