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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by mariannne 2011. 11. 6.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통찰 - 촘스키와의 대화
드니 로베르,베로니카 자라쇼비치 인터뷰/레미 말랭그레 삽화/강주헌 역 | 시대의창
원서 : Deux heures de lucidite : Entretiens avec Denis Robert et Weronika Zarachowicz

노엄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언어학자이고 미국에서는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도 하며, ‘역대 인물 중 여덟 번째로 자주 인용되는 학자’이고 ‘인권 옹호’ ‘지식인의 행동’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지식인이다. 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2008년 우리나라 국방부의 ‘불온서적’ 리스트에 그의 책이 두 권 올라간 적도 있으니 대략 그의 말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인 두 명_소설가와 저널리스트_이 촘스키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인터뷰 한 후 정리한 것으로, 인터뷰어 중 한 명인 드니 로베로는 ‘촘스키야말로 새로운 천년 시대에 진정한 반항 정신을 지닌 살아 있는 저술가이자 사상가’(p.19)라며 그를 칭송했다. 사실 프랑스 지식인들은 포리송 사건(1980년 프랑스 문학교수 로베르 포리송Robert Faurisson이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역사적 거짓말이고, 이 거짓말로 이득을 얻는 쪽은 주로 이스라엘과 세계 전역의 시온주의자’라며 홀로코스트를 부인했고, 포리송의 책이 판금 위협에 처했을 때 촘스키는 “포리송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그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건)으로 인해 촘스키를 마뜩잖아했고, 촘스키 역시 그에 화답(!)하듯 프랑스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일부 과학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땅’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금도 상당히 폐쇄적인 나라입니다. 지식인들이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좀처럼 괌심을 갖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나라입니다. 물론 파리의 지식인 중 소수만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제3세계, 모택동주의 등 모든 것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하찮기 그지없는 것들을 신화처럼 꾸며댑니다.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독단적 주장일 뿐입니다” (p.50)

어쨌거나 그간의 오해를 풀기 위해 촘스키를 만난 두 명의 저술가는 민주주의와 다국적 기업, 금융자본, 언론에 대해 노학자(老學者)에게 질문했고, 촘스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지식인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 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p.29~31)하며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실상은 지식인들이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개탄, 볼셰비키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유기적 존재가 개인에 앞선 특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가진, 거대 권력의 중심인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경계, 금융위기나 생태환경의 재앙에 따른 경제체제 붕괴에의 우려, 클린턴 통치 당시(=인터뷰 당시)의 미국이 성장과 풍요의 시대를 누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직언(종전 이후 이처럼 불평등이 심화된 때가 없었으며, 사회보장은 최악의 수준이고, 노동시간이 산업국가 중 가장 길다는 사실), 역사의 변화는 "대중이 저항하고 싸워서 때때로 승리를 거둘 때에야 진정한 변화가 있을 뿐"(p.144)이라는 충고가 이어진다. 제목처럼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통찰과 그에 따른 경고의 메시지다.

촘스키는 스스로를 '특권층'이라고 하며, 자신이 "새로운 경제 상황 덕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사회 계층에 속해 있다"(p.136)고 한다. 말하자면 '사회 계급에서 최상층'에 속해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자신은 "주변의 소리를 무시하면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 즉 노동자들이 '행동'할 때에는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기 때문에 그들이  '조직화'해야 하고, 이런 조직을 파괴하려는 다각적인 음모에 맞서야하는 것도 잊지 않고 언급한다.  

인터뷰는 1999년 11월에 진행되었고, 2011년인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겠지만(그래서인지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는 50% 할인 가격으로 판매중) 어차피 대부분의 문제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책 속 구절:
다국적 기업은 이제 엄청난 힘을 과시하면서, 경제 • 사회 • 정치 등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가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다국적 기업은 국민 위에 군림하지만, 국민 앞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p.59)

- 다보스에 초청을 받는다면 가시겠습니까?
- 천만에요.
- 왜요?
- 그 사람들이 으스대는 꼴을 내가 왜 봐야 합니까?
- 그래도 그들을 만나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 그들이 내 말에 설득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자본주의부터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권력층에 맞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권력층과의 투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고, 둘째로 투쟁하려 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일원이기를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그들에게 달리 해 줄 말이 없습니다. 그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현상을 두고 다른 결론을 끌어 내고 있을 뿐입니다. (p.65~66)

2차 대전이 끝난 후 사회민주주의 사상과 다소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기업의 지배가 위협받자, 선전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론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언론기관과 홍보기관이 총동원되었습니다. 기업계 지도자의 표현대로 ‘개똥철학’ 즉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유행하는 소비재와 같은 천박한 것’에 집착하는 인생관을 노동자들에게 심어주면서 장시간 노동을 기꺼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타인과의 연대 등과 같은 위험한 생각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p.69)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국민은 투표권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이런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소비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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