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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괴물의 탄생

by mariannne 2009. 1. 11.

괴물의 탄생 -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우석훈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번째 책. 이 시리즈의 첫째권인 "88만원 세대"의 부제를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고 붙이는 바람에 정작 자신은 믿지도 않는 '희망'을, 독자들과 지인들이 '도대체 희망이 어디있느냐?'며 따져드는 바람에 곤란스러워진 저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까닭에 그는 책 머릿말을 통해 항변부터한다. "아니, 처음부터 희망 따위는 없었다는데도 그러시네."(p.6)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합한 "괴물의 탄생"이라는 제목은 '이제 막 탄생했을 뿐'인 한국 경제의 '이상한 레비아탄'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이상한 레비아탄'은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주의 혹은 경제환원주의가 2~3%로 추정되는 한국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하고 만드는 구조와 결합되면서 탄생하게 된'(p.8)것이고, 이것의 '데리다식 해체'의 주체는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일 것이다. '대안'이라고는 하지만, 절대 '희망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저자의 주장은 무엇일까.

시리즈 중 "88만원 세대"와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10대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고, "조직의 재발견"은 기업 CEO 수준에 맞춘 것이며, 이 책은 대학 수업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 학기 분량인 총 13강로 구성되었고, 그 중 1부(1~4강의)는 세계경제이론의 변화에 대해, 2부(5~8강의)는 한국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즉 '괴물의 탄생', 3부(9~13강의)는 그 대안과 3가지 과제, 즉 '괴물의 해체'에 관해 썼다.

1부에서 주목할 내용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그 변화 중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에 대한 것이다. "지금 이해되고 있는 식의 애덤 스미스라면 이명박처럼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모든 것을 민영화하며, 친기업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움직이면 좋을 것이라고 말할 듯싶지만, 실제로 애덤 스미스가 그런 종류의 주장을 한 적은 결코 없"(p.61)다고 한다. 그보다는, '돈'을 많이 갖는 것이 국가의 부와 영예를 키워준다는 생각을 비판한 것이 "국부론"의 저술 목표이며, '생산과 교환 같은 실질적인 경제행위'와 '이러한 행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균형', 그리고 '얼마나 국가가 건전하게 경제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게 바로 애덤 스미스가 하고자 한 얘기다. 1부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이야기는 '제3부문'이다. 1980년 이후 프랑스는 좌파 출신의 미테랑 대통령이 공공 부문 강화를 택했고,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국가 개입을 최소화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제3부문'이라는 것에 주목했는데, '국가도 아니고 기업, 즉 이윤 극대화를 통해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p.99)이다. '대체로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었던 나라, 그러니까 스위스와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는 기업과 공공 부문과 제3부문이 대략 1:1:1로 3등분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p.101)주는데, 이것의 정체는 '공공 부문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사회주의 이념과도 다르고, 시장의 원칙에 의한 이윤 극대화를 주장하는 대기업의 작동 원리와도 다른'(p102) '사회경제' 혹은 '지역공동체주의' '호혜' '공정성'같은 것이다. 여기까지가 1부.

2부는 바로 '괴물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며 "그래도 살기는 좋아졌잖아"라는 일부 긍정적 평가에 대해 저자는 '당시의 국민경제가 안정적이고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p.129)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건 이자율과 물가상승률, 고용률인데, '박정희가 무너진 것은, 경제적인 관점으로는 결국 물가 상승과 고용 불안, 이 두가지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의외로, '전두환 시절의 미덕이라면 유신경제 이후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물가상승률 문제를 해결한 것'(p.131)이라는 얘기도 하는데, 담담한 어조는 오히려 김대중 시대를 거쳐 노무현에 이르러 폭발한다. 작금의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실상'에 대해 저자는 "이런 일탈적 인식의 출발이 이른바 조중동이라 불리는 메이저 언론 때문에 생겨났다고, 노무현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차떼기 정당' 한나라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무엇때문에? - "결정적으로 한국 경제의 붕괴는 바로 '2만 달러 경제'를 국정지표로 삼던 순간, 그리고 이에 연계해서 나머지 문제들이 처리되던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p.191)이란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이고, 'OECD 국가 가운데 이런 괴물의 모습을가진 나라는, 한국밖에는 없는 것 같'(p.190)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만약 어떤 사람이 '지방에 사는 이십대 고졸 출신의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지옥'을 느끼게 될 거라는 추측도 덧붙인다. 그런 사람이 '뉴질랜드나 캐나다에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스웨덴에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는 대목에 가서는 울고싶어진다. '성장 후 분배'라는 원대한 계획은 과연 헛질이었을까.

3부로 가자. "정말로 윤택하고 풍성한 지역경제란 '방문하거나 관광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을 뜻한다"(p.253)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방문한 '스위스 취리히, 독일의 본, 영국의 리즈, 프랑스의 루앙이나 루아르 강변' 등이 그런 곳이란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겨난 것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경제활동으로 '다단계'를 꼽습니다만, 만약 그들이 한국의 사교육을 경험해봤다면 아마 경제의 '암 중의 암'으로 한국 교육을 지적했을"(p.237) 것이고, "한국 경제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경제적 효율성을 비정규직화와 노동시간의 유지를 통해 억지로 끌어가는 중"(p.219)이라서 " '삶의 질'과 같은 고상한 단어가 아니라, 고통지수 혹은 신경질환발생률 같은 것으로 '삶의 고통'을 짚어보기에 훨씬 알맞은 나라"(p.219)라는 게 우석훈 교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어쩌란 말인가?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p.217)가 우석훈의 결론 중 하나다. "사회적으로 평생직장의 개념을 강화하는 대신, 노동과정의 유연성을 높여 사람들이 일을 좀 덜하고 월급도 좀 덜 받지만 공공부문이 적절하게 개입해서 이런저런 '사회적 비용'을 줄여"(p.218)주는, 그리하여 "국민경제의 효율성도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동시에 '삶의 질'도 높아지게"(p.218)되는 우석훈의 해법을 눈여겨보자. "사교육 해체"와 공공, 기업부문과 함께 제3부문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관된 주장을 읽다 보면 '희망 따위는 없다'라는 저자의 말이 아예 비관적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속 구절 :
외지인 중심의 땅값 올리기 경제는 일종의 바이러스와 숙주 관계 비슷합니다. 숙주가 죽든 말든 자신의 번식만을 생각하는 일종의 기생충 경제와 같은 문제에서 극적으로 돌아 나오는 길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정상적인 주민자치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분산형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길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이렇게 가자면 갈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합니다. 가장 간단한 출발점은 헌법 121조에 근거해서 전국의 농지 보유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는 일입니다. 진짜 농민으로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아니면 청와대의 일부 수석이나 장관들처럼 위장전입을 해서 구입한 것인지 파악하는 전수조사는 새로운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사실은 법적 절차가 있는데, 안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차피 이를 집행할 고위공무원들도 불법으로 농지를 소유한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지역에서 자치 영역을 확보해가는 것이, '땅값 포퓰리즘'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분산형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는,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유일하게 실질적이며 경제적인 해법입니다. (p.172~173)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게 가장 컸던 문화적 충격은, 비록 일부이지만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만났던 취리히 공과대학의 한 전문사서가, 자신의 두 아이가 조금 더 자랄 때까지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하는 방식을 계속 하겠다고 하더란 거지요. 7일 가운데 2일만 일한다고! 정규직인 그녀는 임금 수준의 1/3 정도를 포기하는 대신 일주일에 닷새를 쉬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남편의 월급과 합치면 그런대로 살 만하고, 그 대신 습관적으로 카페에서 마시던 에스프레소만 좀 줄이면 된다는 식이더군요. 전문직과 문화계를 중심으로 그런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들'이 스위스에서는 늘어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한국에서는 주5일제가 도입되면서 '일주일에 이틀 노는 사람들'이 생기면 노동시간이 줄어서 큰일이 난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눈물이 핑 돌더군요. 21세기의 지구 한편에서는 이틀 일하면서 식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지내고, 그러면서 독서하고 사색하는 전문가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수많은 자칭 전문가들과 화이트칼라들이 일중독에 빠져 놀거나 회사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없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니......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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