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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사회·정치·역사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by mariannne 2008. 11. 4.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김규항, 박노자, 손석춘, 심상정, 진중권, 한홍구, 홍세화 | 시대의창)

저자인 지승호 씨의 말마따나 "한동안 담론의 영역에서 좌파가 대중적인 인지도나 신뢰 면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인기 있는 칼럼니스트 중에서 한홍구, 박노자, 진중권, 홍세화, 김규항 같은 분들이 전부 좌파"(p.148)다. 2006년 봄부터 2007년 봄까지 이들 칼럼니스트를 포함하여 심상정, 손석춘 씨까지 총 일곱 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지승호의 책 표지에는 '10% 부자를 위한 신자유주의 자본 파시즘에 맞선 7인의 지성'이 '90%의 약자를 위한 참 정치를 말한다'고 씌여있다. 누군가에게는 몹시 유혹적인 카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문구文句다.

인터뷰이들은 입을 모아 '진보연하는 보수 노무현'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미 FTA에 핏대를 올리고 있으며(만약 2008년에 인터뷰를 했다면 그 강도가 얼마나 높았을까), 작년 인터뷰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오히려 '진보'적이지 않느냐는 얘기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홍세화 씨의 말대로 '지금 시대의 진보'는 '사회의 구조화된 시장주의라든지, 신자유주의라든지, 또는 수구적인 물적 토대들, 제도들, 법률, 온갖 몰상식하게 관행화된 것에 의해 고통받는 것을 제거해가는 과정'(p.110~111)일텐데, '진보'를 외치는 이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보수의 트로이목마'인 셈이다. (...) 다 좋고, 다 옳지만, 그들은 상대를 '사회의식이 낮다'던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며, 정작 그들 자신의 모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확실한 주장과 완벽해보이는 논리에도 역시 정반대되는 주장과 논리가 있기 마련. '교육무상화'에 대해 얘기할 때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규직 교수 못지 않게 박사급의 시간강사 또는 비정규직 교수들의 숫자가 많"고 "열심히 돈 들여서 박사가 되더라도 이 나라에서는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의 분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p31)고 하면서, '전교조' 얘기를 꺼낼 때는,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와서 대학에 들어올 만큼 네트워크 자본과 재정적인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에서는 신자유주의로 헤택을 받는 계층에 속할 확률이 높"고 "교수들 중에서는 빈민층은 물론이고, 중간층 출신자들도 가면 갈수록 드물어"(p.33)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 뭐, 다 맞는 말이다. 결국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치'로의 결론을 내기만 한다면 누가 반대를 하겠나(반대를 해도, 누가 그걸 겉으로 드러내겠나). 하지만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일곱명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붙잡고 있자니 사실 속이 쓰리다. 박노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니 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지지자들인가, 비판자들인가. 그 누구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나 자신에게도 그랬을까봐 더욱 걱정이고.

흥미진진하기로 치자면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들을 다 모아 놓은 것 만한 건 드물겠다. 손석춘의 말처럼 '정치적 성향으로 어느 당인지 어느 정치를 선호하는지를 구분'(p.321)하며 정치적 재단을 하는 것보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르냐'를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만, 어쨌거나 "대중 매체 글쓰기는 솔직하게는 절필해야 하지 않을까 싶"(p.60)다는 박노자와 "당분간이 아니라 영원히가 될지도 모르겠"(p.301)지만 논객으로서의 글은 쓰지 않겠다는 진중권을 보면 아쉽긴 하다. 누구 말마따나 '자본과 늘 긴장하면서 불온할 것'이라는 좌파적 성향을, 홍세화도, 박노자도, 진중권도 갖고 있지 않다지만.

책 속 구절 :
이념이 오른쪽에서만 가상 형태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한숨이 나오도록 여러 번 되풀이했던 말인데요. 우리나라에 왼쪽 이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죠. 이렇게 이념적 스펙트럼이 편중되어 있는 게 문제인 건 선진적인 이념적 스펙트럼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이념은 계급의 반영이기 때문이죠. 우파라는 것은 중간 이상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태도이고, 좌파라는 것은 중간 이하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태도죠. 사회가 진보한다, 변화한다는 것은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간 이하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중간 이상 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거죠.
지금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이미 민주화되었고 좌파, 진보적인 기회가 주어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좌가 거의 진공 상태예요. 민노당은 중도좌파라고 볼 수 있는데 힘을 별로 못 쓰고 있됴. 이 끔찍한 사실은 결국 한국의 정치라는 것이 중간 이상 계급의 이해만 대변한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 꼴인 겁니다. 모든 정치가 그렇게 되고 있잖아요. 중간 이상 계급의 이해 중에서 '아주 수구적인 극우냐, 아니면 조금 더 자유주의적인 부르주아 진영이냐' 이런 차이가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권의 차이일 뿐이죠.
결국 우파라는 것은 현재 사회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건데 다른 나라를 보세요. 이념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가와 그 사회가 얼마나 훌륭한가는 전적으로 일치해요. 북구나 서유럽을 보세요. 보수적인 사람들도 교육 문제를 얘기하면 프랑스가 어떻고 독일이 어떻고 그렇잖아요. 다큐 같은 걸 보면 경제든 의료든 교육이든 사회든 문화든 늘 그런데 마치 그 사회와 우리 사회의 차이는 국민성처럼 말합니다. 정서적인 경향은 있겠지만 한 사회엔 나쁜 놈도 있고 좋은 놈도 있는거지 사회가 좋고 나쁠 만큼의 차이가 어디 있겠어요. 차이는 하나예요. 그 사회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 다시 말해서 좌파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중간 이하 계급, 실제 인구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성원들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p.141~142, 대한민국, 자본 파시즘이 지배하는 나라 - 김규항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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