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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만화

아이의 체온

by mariannne 2002. 6. 16.

아이의 체온
(Fumi Yoshinaga | 서울문화사)

이 책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딱히 주인공이라 할 사람은 없으며, 등장인물들은 모두 연관이 있는 사이. 하나씩만 골라 읽어도 좋다. 처음엔 “서양골동 양과자점”의 작가가 그렸다고 해, 관심이 갔다. “서양골동…”이 주변 사람들의 추천사처럼 썩 재미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했고, 이 작품 역시 뭔가 특별할 거라 믿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수작(秀作)이다. 내가 읽은 만화 중 Mieko Osaka의 “아름다운 시절”, Kazumi Yamashita의 “천재 유교수의 생활”, Ai Yazawa의 “나나”, Urasawa Naoki의 “마스터 키튼”, Kenshi Hirokane의 “황혼 유성군”, 그리고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에도 붙여주고 싶은 이름.

표제작 ‘아이의 체온’은 아내가 죽은 후,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아빠의 이야기다. 아니, 아빠가 중심이긴 하지만, 사실은 중1의 아들 이야기다. 내용은 김 빠질까봐 미리 쓰지 않겠지만, 나는 아주 짧은 이 이야기를 읽고, 하루키의 소설을 접한 느낌을 가졌다. 깔끔하고, 아주 쿨하다. 하지만 소재는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home party’는 위의 그 아빠가 아들과 함께 죽은 아내의 집에 방문한 이야기. 장인어른과 하룻밤 동안 음식을 만들며 결국 내내 어색하게 감춰왔던 아내의 이름을 꺼내게 된다. ‘서양골동…’에서도 느꼈지만, 작가는 대단한 미식가인 것 같다. 아니면, 일전에 요리에 심취해 있었거나. 이 단편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같다. 담담하고, 아주 아무일이 아닌 것처럼 일상이 지나가지만, 결국은 대단한 감동이 숨겨져 있다.

이 책 속의 한 캐릭터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온 퇴역 장군 알 파치노를 연상시킨다.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되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전직 변호사. 하지만 땀흘려 재활 훈련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언제나 도도한 척, 멋진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뷰티풀 라이프 스토리 2를 기대하세요!’라는 짧은 문구가 박혀 있다. 하지만, 다른 책에서 본 느낌과는 너무도 다르게, 내 마음속에서는 ‘정말 기대하고 있다구!’라는 말이 스쳤다. 빨리 나왔으면…

책 속 구절 :
“수중의 돈은 하루를 넘기기 않는단 철칙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난 이름만 변호사일 뿐, 빈털터리야.” “…… 알고 있어.” “땀범벅이 돼가며 재활 훈련을 계속할 생각도, 성공적인 장애인 자립 케이스 따위 될 생각도 전혀 없어.” “물론 넌 내가 보살필 거야.” “일은 어쩌고?” “그만두지.” “집사람은?” “헤어졌어…… 그러니까 너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줬으면 좋겠어. 네게 편리한 대로 집 안도 손봐둘 테니까.” “평생 노예로 부려주지.” “노예가 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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