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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쓸모없는 여자

by mariannne 2002. 7. 19.


쓸모없는 여자
(무라카미 류 저 | 컬처클럽)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서 시작,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와 <달빛의 강> <공생충> <오디션>을 비롯해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들은 몹시 파격적이다. 적어도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몇몇 소설을 통해, 그는 ‘SM’과 ‘마약’으로 뒤범벅이 된 글을 창조한 작가로 인식되었다. 그런 몇 가지 코드 이외에 영화와 재즈, 요리 등에 일가견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그런 작가… 무라카미 류는 언제나 당당하고, 매력적인 글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그런 작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쓸모없는 여자>는 다르다. 그는 기운이 쪽 빠진 것 같다. “I.m”과 “CLASSY”라는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아 출판한 이 책은, 몹시 교훈적이다. 그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이런 글을 써낸 것일까? 대체로 착하고 바르고 희망적이며 긍정적인 여자란 이런 것이다, 하는 내용들인데… 읽다보면, ‘그렇지’라는 것 보다는 ‘아니,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썼다면 납득할 만한 이야기도, ‘이걸 왜 무라카미 류가 굳이 써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무라카미 류는 명품에 열광하고, 남자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여자들을 ‘쓸모없는 여자’라 한다. 대체로 어리석은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곳곳에 ‘쓸모없는 여자보다 더 쓸모없는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내용을 읽어도 무라카미 류가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 든다. 나의 이런 생각에 그는 ‘내가 뭘 어쨌단 말이야!’라고 소리칠지도 모르지만.

책 속 구절 :
에르메스의 본국 프랑스는 다르다. 내가 머물고 있었던 낭트 교외의, 포도밭이 계속 이어지는 구릉 한가운데에 있는 중세 그대로의 마을에서도 수도원을 개조한 프로방스의 호텔 테라스에서도 마르세유의 작은 어항에서도 루아르 강변의 리용의 아이스크림 가판대에서도 툴루즈의 서민적인 레스토랑에서도 고속 도로의 주유소에서도 기차역에서도 렌터카 점포에서도 공항의 대합실에서도 시골의 가로수길에서도 도시의 변두리에서도 광장에서도 공원에서도 에르메스 가방이나 셔츠는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우리는 에르메스 가방이나 셔츠가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에 둘러싸여 어울리지 않는 풍경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잊으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 말을 해 버리면 꿈이 없어지잖아, 하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명품 브랜드를 가지면 한 순간이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조금 사치스런 꿈을 꾸고 싶은 것이다, 하고. 그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풍경에는 우리의 현실만이 있고, 아름다운 것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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