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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by mariannne 2002. 6. 8.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이충걸 | 디자인하우스)

이충걸이란 이름 석자는 어떤 글 한편에 붙어 있는 명품 라벨을 의미한다. ‘보그 코리아’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며 즐겁게 글을 읽던 기억이 있다. ‘GQ’라는 남성 잡지의 편집장으로 옮겨 간 이후, 지금은 아쉬움이 하늘만큼이지만.

고향, 엄마, 시골, 유년... 이런 단어에는 특별한 끌림이 없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이충걸'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그는 청담동, 퓨전 레스토랑, 트렌드, 패셔너블, 스포츠카... 이런 것들과 참 잘 어울리는 글을 쓰지만, 역시 어떤 소재라도 '그'를 거치면 이렇게 멋스러워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의 나이를 잘 알 수는 없지만, 마흔에 가까울 거라는 짐작을 한다. 그렇게 다 큰 남자가 '엄마'와 단 둘이 산다. 마마보이일까? 어찌보면 대부분의 한국 남자는 마마보이다. 그것은 닭살스럽고 여성적인 취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성을 구하고, 어머니와 닮은 여자를 찾고, 어머니와 비교하고, 아내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서일 뿐이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콧등이 시큰해지고, '어머니'의 무심한 말 한 마디에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사람... 그가 이충걸이고, 또 한국 대부분의 남자다.

지금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며, 어머니가 없는 그때가 되면 '긴 시간이 지나 있어도... 병원의 벽처럼 벌거벗은 채, 시간을 움켜잡지 못한 무력함을 매일 반추하겠지'라고 말하는 그도 아버지를 양육한 '범절'에 대해 '언제나 '가족의 계속'이라는 뿌리칠 길 없는 생물학적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음을 고백한다. 읽다보면, 특별히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맘에 쏙 드는 아들도 아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살가운 정담보다는 툭툭 던지듯 내뱉는 말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두 모자의 대화. 정말 감동이다.

아... 그의 글은 왜 이렇게 멋질까! 어쩌면 저자는 '흠, 멋지라고 쓴 글에 감탄하다니, 당연한 거 아니야!'하며 비웃을지 모른다. 그의 글은 군데군데 일부러 멋스러운 표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와 같은 글솜씨를 준다면, 나는 세상이 부럽지 않을텐데!

일부러 바랜 색을 선택한 책 장정은 더욱 나를 기쁘게 했다. 번쩍 번쩍 흰 빛이 나는 고급 종이가 아닌 것도 좋았다. 며칠씩 손에 들고 다니며 조금씩 조금씩 읽은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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