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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뷰티풀 몬스터

by mariannne 2004. 8. 26.

뷰티풀 몬스터
(김경 저 | 생각의나무)

마감의 고통을 매월 극복해 내는 잡지사 기자들은 1. 매번 지면 채우기 바쁜 나머지 점점 어처구니 없는 기사만 쏟아내거나 2.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쌓여 화려한 글발의 소유자로 등극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즉, 2번의 경우는, 설렁설렁 글 쓰는 소설가나 수필가 내지 칼럼니스트보다 한 수 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하는 잡지 기자를 꼽자면, GQ 편집장 이충걸, 바자 김경숙, 보그 김지수, 그리고 페이퍼의 황경신과 정유희다. 이충걸의 글은 여전히 낯설고, 김지수는 지루한 면이 있고, 황경신은 좀 말랑말랑하며, 정유희는 말장난이 많아(굳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부분을 끄집어내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김경(김경숙 기자의 필명)의 글이 읽기에 가장 좋다.

나는 순전히 김경 기자의 글을 읽기 위해 일부러 매월 바자를 찾는데, 이번 달 편집자 후기에서 그녀의 책이 나왔다는 문구를 읽고, 냉큼 사게 됐다. 휴가 전날이라, 새벽까지 읽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읽으며 행복해했다.

이 책은 도시, 패션, 여자, 남자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는 그녀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표지에 있는 그녀의 냉소적인 표정과는 달리 글 속에는 약간은 소심하고, 자조적인 태도가 섞여 있다. '전여옥을 위한 패션 제안'에 가서는 날카로움과 빈정거림이 압권이며, '전도연의 노브라를 변호함'에서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유쾌한 페미니스트가 된다. 서른 셋의 노처녀답게 적당히 쿨하면서, 적당히 공격적인 글을 보니 구구절절 공감 가는 내용뿐이다. 이런 책이 한 달에 한 권씩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책 속 구절 :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친구들과 간장게장에 소주를 마시며 행복했다. 게 등딱지에 밥을 비벼 먹으며 나는 울고 싶었다. 살아 있던 게의 살과 뼈에 스며든 그 짭짤하고 달콤한 간장 맛, 싱싱한 개펄 내음과 어우러진 그 게장 국물은 정말 감탄 없이는 넘길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그 게딱지 구석구석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난 살아 있는 게 좋아.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잖아!”
친구들은 건성으로 “맞아, 맞아”를 외쳤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살아서 간장 게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 선생의 글에서 “개가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럽게 오래 살고 싶어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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