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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만행

by mariannne 2013. 8. 2.





만행 1, 2-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은이) |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 


오래전에 읽은 책이고, 다시 읽고 싶어 중고서점을 뒤졌다. 다행히 여러 권 재고가 있어 두 권에 5천4백 원에 살 수 있었다. 읽다 보니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 느꼈던 감동도 그대로 이어졌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나? 


저자인 현각 스님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의 이름은 폴 뮌젠. 어려서부터 호기심 많고 생각 많은데다 아홉 형제 중 가장 종교적인 인간이라 카톨릭 신부나 수도사가 되려고 했다. 그게 자신의 길이라 믿었다.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원에서 철학과 종교, 문학을 공부했지만, 삶과 종교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하버드대에 강연을 온 숭산스님을 만났고, 그것을 계기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승려가 되었지만, 자신이 ‘불교로 개종했는가?’라는 질문에 ‘종교를 바꿨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진리’를 찾고 있을 뿐이다. ‘출가’를 결심하면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부모와 조국을 떠났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행하며 그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고, 진정 원했던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승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면 전도 중인 기독교인들은 그를 ‘사탄’이라고 한단다. ‘성경’을 읽고 회개하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수십 번이나 읽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져버렸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불교의 ‘자비’는 같은 거로 생각한다. 현각스님과 같이 수행하는 유태인 대봉스님 일화도 흥미롭다. 유태교 집안에서 자란 대봉스님도 집안의 반대가 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불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숭산스님과 함께 부모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온 가족이 모여 숭산스님을 상대로 종교 논쟁을 펼쳤고, 결국 부모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숭산스님이 가시는 길과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너의 수행을 허락한다.”


이 책은 현각스님이 30대 후반에 쓴 것이다.  이제 50이 다 된 그는 여전히 수행 중이며, 외국에 한국 불교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책 속 구절: 

돌이켜보니 어느새 스님 생활 10년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카톨릭 신자가 불교 신자로, 그것도 수행자가 되었느냐고 묻는다. 이른바 개종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참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불교로 개종했는가?’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한번도 내가 종교를 바꿨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기독교나 카톨릭이라는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분명 개종을 한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너무 바보 같고 불쌍한 인간이다. 이 세계의 유일한 진리를 버리고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서울에서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데 아주 열정에 찬,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한 기독교 신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면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가끔 일꺠워주곤 한다. 그들은 내가 잿빛 승복을 입고 절에 가서 금불상 앞에 절을 한다면 죽어 지옥에 갈 것이 뻔하다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한번도, 한순간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참선수행을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내 자신이 놀라곤 한다. 나는 매일 열심히 맑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다. 결코 나 혼자만의 안일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빌고 또 빈다. 

[…]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p.14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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