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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퀴즈 쇼

by mariannne 2007. 11. 11.


퀴즈 쇼
(김영하 저 | 문학동네)

작가 후기에서 "도대체 누가 이 두꺼운 걸 다 썼단 말인가?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고 말하는 김영하의 위트에 웃음이 났다. 한 20대 청년의 '소설'같은 삶을 다룬 이 소설은, 평론가의 말대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저자의 바람처럼 '단 한번이라도 모니터 앞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키보드를 두드려 밀어를 나누고, 아바타 뒤에서 숨어 얼굴을 붉혀본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추천사를 쓴 한 명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젊은이들 세계의 한 단면을 새삼 알게 되고 또한 그들의 고시방과 알바 생활 등 경제적 어려움도 동정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느 독자는, '다 읽고, 얼른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미친 듯이 읽었다.'(pjs9552)고 했는데, 나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책의 분량은 400페이지가 넘어 상당했지만, 다행히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빨랐다. 내용은 주인공의 불우한 사생아 처지로 시작하여, 별로 아쉬울 것 없는 학창시절을 거쳐,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대한민국 20대의 절망(우석훈 씨가 말한 '88만 원 세대'다)을 몸소 경험하다가 불가사의한 상황에 빠져들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등 널뛰기였다. 재미는 있지만, 도대체 어떤 자세로 이 소설과 마주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굉장히 현실적인 김애란의 소설의 몇 장면도 생각나고(비슷하다는 건 아니다), 영화 '큐브'와 하일지의 소설 '경마장에서 생긴 일'('경마장 가는 길'이 아니라)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 같기도 하고...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역량을 너무 많이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천재인지 바보인지 모를 주인공의 상태도 난해했지만, '요정'에서 '공주'가 된 여주인공(주인공 치고는 대사가 별로 없었지만) 역시 왜 등장했는지 모른 채 소설이 끝나고 말았다. 몇 가지의 여운을 남긴 것일까. 책을 읽는 일주일 내내 버라이어티 쇼를 본 것처럼 즐거운 건 사실이었다.

책 속 구절 :
그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살은 가능한가? 이것이 내 정신이 겪는 일종의 정교한 환상이라면 내 정신이 내 정신을 살해할 수도 있는가?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는 내가 무엇을 묻고 싶어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는 빈방에 혼자 남겨졌다. 마치 철학우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섹션은 불가지론.
너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대학교 일학년 철학개론 시간에 교수가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멍한 기분으로 홀로복도를 서성대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은 역시 단말기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더이상 그 단말기는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의 말대로라면 이 모든 게 일종의 환각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여기서 겪는 모든 일이 과연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고민을 거듭해봤지만 모든 게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유리의 말을 반박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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