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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죽음의 춤

by mariannne 2011. 10. 30.

죽음의 춤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 한빛문화사

15년도 더 전에 읽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Tous les hommes sont mortels.”를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찾아봤더니 이미 절판된 지 오래인데다가 인터넷 서점에는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고 국립도서관에서나 가야 볼 수 있어 포기하고, 대신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죽음의 춤”을 사서 읽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여성학 고전인 “제2의 성”과 소설 “타인의 피” “초대받은 여자”, 그리고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잘 알려진 20세기 프랑스 지식인이다. 소르본느 대학 졸업 후 스물 한 살에 치른 철학교수 자격 시험에서 사르트르에 이어 차석이자 최연소 합격을 했으며 사실은 사르트르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죽음의 춤”은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이다. 골절상으로 입원한 어머니의 소장에서 종양이 발견되고, ‘복막염’ 정도로 어머니를 안심시킨 후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어머니를 몇 주간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인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는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또는 다 살았기 때문에, 늙었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의해 죽는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주위의 그 누구의 죽음보다도 더 아프고, 믿기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에 가까운 것이라는 걸, 누가 그걸 부정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시중에 없었는데, 2016년 10월 현재, 다시 책이 출간되어 판매중이다.)    


책 속 구절:
엄마의 임종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최근의 내 책에 대한 편지를 많이 받아보았다. 신앙이 독실한 사람들은 내게 동정과 비난이 섞인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신이 신앙을 잃지 않았다면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이오.”
호감을 가진 독자들은 내게, 이렇게 격려하기도 했다.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작품은 남을 테니까요.”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노라고 마음속으로 답장을 썼다.
나에게도, 더구나 엄마에게도, 종교가 죽음 뒤에 오는 행복에 대한 희망일 수는 없었다. 영원불멸이라는 것이 천국에서 이루어지든 지상에서 이루어지든, 삶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영원불멸이 죽음에 대한 위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167)

[…] 사람들이 일흔이 넘은 자기 부모나 조부모가 숨을 거두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쉰 살이나 된 여자가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고 괴로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그 여자가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고, 80세면 죽어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만한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람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었다. 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었다. 늙었기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그 무엇인가’에 의해서 죽을 뿐이다.
엄마도 연세가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날이 멀지 않을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끔찍한 충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암, 혈전증, 폐렴 따위의 병은 하늘 높이 날아가던 비행기의 엔진이 갑자기 멈춰 추락하는 것만큼이나 예상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일이다.
엄마는 침대에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죽어가는 상태에서, 한 순간 한 순간 속에 깃들인 무한한 가치를 확인했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냈다. 하지만 엄마의 헛된 집념과 마음을 달래주는 일상의 휘장은 찢겨지고 말았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p.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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