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리뷰들이 혹평 일색이라 기대를 하지 않고 봤더니,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모두들 지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20년 전 시나리오 역시 뭔가 다를거라 기대했기 때문일까. 이 만화는 “개미”나 “아버지들의 아버지”같은 그의 장편 소설보다는 최근에 나온 “나무”의 몇 편과 좀 더 닮아있으면서, 그보다 더 음울하다. 헐리우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우리 정서에는 왠지 어색하기만 한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만화가 그렇다.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리 진지하단 말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유럽 사람들은 자기네들 만화를 정말 좋다고 읽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이 만화는 “슬라이딩 도어즈”의 주인공처럼 실직한 날 애인에게 배신까지 당한 미모의 여자 아망딘이 살아갈 의욕을 잃고 자살 사이트에 이름을 등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자살 사이트의 특징은, 누군가를 죽인 후 자신도 누군가에게 무사히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밟아간다는 것. 발상이 기가 막히다. 아망딘은 엉겁결에 누군가를 죽이지만, 곧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며 그 조직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 조직(여기에는 정부의 음모론도 제기된다)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우여곡절 끝에 만화 같은 현실을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왠지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점까지 부러운 게 사실이다.
취향에 따라 이 만화를 좋아할 수도 있고, 무척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일단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슬쩍 넘겨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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