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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한국의 일상 이야기

by mariannne 2003. 12. 19.

한국의 일상 이야기 : 어느 프랑스인이 본 처가의 나라 꼬레
(에릭 비데 저/니코비 그림 | 눈빛)

"난 너무 뚱뚱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그래, 너 좀 뚱뚱해"라고 말해선 안된다. 남편 흉을 보는 부인에게 맞장구를 치는 것도 금물이다. 나의 결점을 남에게서 듣는 것은 실제의 그 결점과는 상관없이 기분 나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왠지 좀 불편하다.

이 책의 저자는 나보다도 더 한국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서울의 뒷골목이나 지방 소도시까지도 열심히 다닌 흔적이 책 곳곳에 남아 있다. 그가 말한, “여유를 잃어버린 사회”라든지 “경제 기적의 씁쓸한 뒷맛을 가진 나라”까지는 동감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면서 대중 목욕탕, 강아지도 들어 있는 음식, 다섯 명 중의 한 명이 알코올 중독자인 나라로 소개한다는 사실은 정말 곤란하다. 게다가 시종일관 ‘허름’이나 ‘토속적’이라는 말로 서울과 지방 구석구석의 가게를 칭찬하는 것도 불편했다. 물론 한 외국인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고 하는 것을 내가 책망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이 책과 함께 주문한 또 다른 책은 프랑스에 유학간 우리나라 젊은 부부의 프랑스 소개서인데, 내용이 상당히 대조적다. 그들은 파리를 낭만과 예술의 도시, 여유와 멋의 도시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의 기본 마인드는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고(부제에서도 나와 있듯이 부인이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변해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는 대중탕을 몹시 좋아하고, 보신탕도 거부감 없이 먹을 줄 아는 외국인이다. 하지만 책 곳곳에서 친근감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을 발견하니 당황스럽다. 게다가 번역이 상당히 엉성(이를테면 ‘그런데’의 남발이나, 한문장에 ‘~~적’ ‘~~의’이라는 단어가 여럿 들어가는 것, 외국인이 우리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직역을 한 듯한 느낌 등)한 것이 거슬렸다. 번역자의 약력으로 보아 절대 서투른 번역을 할 것 같지 않아, 내가 잘못 읽고 있지는 않은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문장을 되씹어야 했다.

책 속 구절 :
창구에 있는 손님이 볼일을 다 보기도 전에 뒤에 있는 손님은 일렬로 줄을 서기는 커녕 옆에 와서 앞 손님의 볼일에 마치 참여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서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예 미리 종이를 내밀면서 자신이 먼저 볼일을 보려고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크리스 마커는 이런 면이 오히려 서구인들이 아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집단상상력 속의 “아시아인들의 전형적인 무표정한 무반응”과 대조되는 자발적인 표현력 있는 행동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시아인들의 여유, 인내심 등에 대해서 서구인들이 오늘날 조롱섞인 발언을 한다면, 그때는 아마도 크리스 마커처럼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 것 같다. 이제 거의 국가의 빠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며, 국민의 기본가치처럼 인정되고 있는 ‘빨리빨리’의 문화는 근대 한국의 상표처럼 되었고, 1990년대 한국의 사회는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표현을 빌자면 “소진의 사회(societe de consummation)” 즉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며, 항상 분주하며, 휴식을 모르고, 계속해서, 잉여부분인 ‘저주받은 부분’을 처분해 버리려는 움직임이 있는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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