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비소설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

by mariannne 2003. 9. 21.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
(윤광준 저 | 생각의나무)

오디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소리의 황홀”을 읽으며 사진작가이자 오디오 칼럼니스트라는 이 사람, 윤광준의 글이 참 좋아졌다. 그의 글은 솔직하면서도 과장이나 군더더기가 없어 잘 읽힌다. “생활명품산책”은 “소리의 황홀”보다 더 늦게 읽기 시작했지만, 읽기를 먼저 마쳤다. 소재가 대중적인데다가 작은 18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쉽게 손이 갔기 때문이다.

수 십 년의 세월을 살아도 세상의 모든 물건을 다 써보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한 물건만큼은 다 구입해서 사용해볼 수 있을까? 그것도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군가 특별한 사연으로“명품”이라 말하는 물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조금 참는 게 좋을 것 같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수 년 혹은 수 십 년을 함께 하면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고급스러운 물건. 그것이 명품일 테니 말이다. 요즘처럼 외국에서 수입한 비싼 브랜드를 모두 명품으로 이름 붙인 것은 아무래도 너무 경박스럽다.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그렇게 생각될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하는 18개의 명품은 국적을 불문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어떤 것은 수 십, 수 백만 원을 웃돌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단돈 얼마에 살 수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브랜드의 역사이고, 물건을 만드는 장인의 손길과 마음, 그 물건을 직접 사용해 본 저자가 쌓아온 세월이다. 18년을 신어도 변함없는 송림 티롤화 때문에 청바지를 사입고, 한 때 마음에 드는 벨트 때문에 면바지만 줄기차게 입었다는 그의 앞에서 30만원이 넘는 따끈따끈한 올 시즌 최고 트렌드의 이태리제 청바지를 명품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책 속 구절 :
로버트 플라트 사장의 말 한마디는 몽블랑의 지향을 대변해 준다. "모름지기 명품이란 신화(myth)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쓰는 필기구, 이런 식으로 기능 이상의 무엇을 내뿜어야 하고, 제품에는 영혼을 담아야 하는 거지요." 현대 사회의 효율을 비웃기라도 하듯 몽블랑은 '천천히'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대량 생산의 효율을 포기하고 아직도 숙련된 장인의 손끝을 거쳐 일일이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지닌 만년필은 인간의 사고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확신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