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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by mariannne 2003. 12. 30.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 | 동문선)

하루키의 에세이에서는 심플한 그의 삶이 느껴진다. 아침형 인간에, 과음도 안하고, 채식을 즐기며, 스트레스도 잘 모르는 산뜻한 삶. 소설도 그 느낌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소설은 잘 익은 과일처럼 상큼하면서도 '깊은 느낌'을 주는 게 좀 다르다. 그에 반해 에세이는 무척 가볍고 즐겁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그의 앞에 어떤 소재를 던져도 착착 풀어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잘 알면 아는 만큼, 모르면 모르는 만큼, 솔직 담백하게 주절주절 얘기하지 않을까.
이 책은 끝부분을 갈수록 허술해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내가 허술하게 읽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어 사전이나 일본 시리즈(프로야구)따위에 관심이 없으니, 지루할 수 밖에. 그것 말고는, 다른 하루키의 수필집과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책 속 구절 :
물론 실제로는 줄곧 듣고 있었지만, 비틀스나 스톤즈의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 것은 고작해야 7,8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리스의 한 섬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딱히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비틀스가 듣고 싶어 내내 들었다. 그래서 '화이트 앨범'을 들으면 지금도 그리스의 가을 오후, 인적없는 해안이 눈앞에 떠오른다.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은 파랗고 끝없이 높고, 구름은 마치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얗다. 소나무 숲의 냄새도 난다. 생각해 보면 '화이트 앨범'=그리스의 해안이라는 것도 좀 묘하지만.

그런데 '화이트 앨범' 하면, 그 옛날 어디선가 본 재킷에 '오블라디 오블라다'의 가사가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고 씌어 있었던 것이 생각나다. '우와, 굉장하다, 초현실적인 가사야. 과연 존 레논(인지 폴 매카트니인지)이다' 싶어 가사를 귀 기울여 들어 보니

Obladi, oblada,
Life goes on, blah!

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문장상 이 블라는 브래지어의 브라(bra)가 아니라 역시 환호 소리 같은 blah!가 아닐까, 틀림없이. 그래야 운율에 맞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이미지가 너무 재미있어 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다. 하긴 뭐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봐야 별 볼일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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