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어렵다. 매일 갖고 다니며 읽어도 매번 제목을 떠올리기 힘들다. ‘이별의 나날’인가, ‘슬픔의 시간’? 아니면 ‘세월의 슬픔’이었나… 그리고 제목만큼 내용도 어렵다.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잡으려면 어느 경지에 올라야 하는 것일까?
오래 전부터 이충걸의 글을 좋아했는데, 그의 독특한 어휘나 언제든 쉽게 바스러같은 아슬아슬한 감수성, 은유와 비유로 가늠할 수 있는 상상력 따위가 너무 부러웠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폭탄 위협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머리를 숙인 채 뛰어다녔다. 네온이 꺼지고 비가 뿌리는 거리는 간(肝)에 얼룩덜룩 박혀 있는 지방 덩어리처럼 보였다.”나 “어쨌든 매일 기대와 황홀이 바닷 바위 위의 삿갓조개처럼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나는 클립만 있으면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즐거운 도둑 같았다.” 같은.
이전의 <보그>나 요즘의 <지큐GQ>
책 소개를 보면, “<슬픔의 냄새>를 통해서는 그가 일생 동안 겪은 숱한 이별의 순간을 들추어 추억하고 있다.”고 하는데, 연인이나 가족과의 이별 같은 싸한 장면을 떠올려서는 안된다. 이 책은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 중에는 혐오해 마지 않는 부류도 있고, 별 느낌도 없는데 왜 만나서 술을 마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아쉽지만 어쨌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이충걸다운 냉소나 소극적인 반항, 또는 너무 솔직해서 두렵기까지 한 비난을 읽을 수 있어 좋다. 조금 감추거나 정돈되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책 속 구절 :
사람들은 고양이다. 그들은 내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양이는 가격이나 품종, 침대나 먹이에 상관없이 다른 장소에서 더 나은 사랑을 발견하면 주인을 떠난다. 그러므로 난 고양이를 소유한 게 아니라 더불어 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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