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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그녀 이름은

by mariannne 2023. 11. 2.

 

 

문학 > 소설 > 한국소설 > 한국 단편소설

그녀 이름은
조남주 저 | 다산책방 | 2018년 05월 


이것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이 작가는 페미니스트인가 휴머니스트인가.  이 소설집을 읽으니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이 왜 김지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작가는 대놓고 여자의 삶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얇은 책 속에는 무려 27편의 짧은 소설이 실려 있고, 27명 이상의 여성이 저마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십대 후반의 소진은 한 공기업 지방 지사에서 일하면서 상사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후 증거까지 제출했지만, 피해자이면서도 손가락질 받으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다른 한 20대 여성은 혼자 사는 3층 집에 누군가 가스배관을 타고 방으로 들어오려는 바람에  소릴 질렀는데, 놀라 떨어진 범인은 같은 건물에 사는 청년이었고, 전과도 없고, 술김에 한 행동이라면서 경찰이 오히려 그렇게 소릴 질러 놀래키면 어떻게 하냐고 그녀를 몰아세웠다. 또 한 여성은 어머니가 뇌에 종양이 생겨 누군가 간병을 해야 하는데, 자식중에서는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 없고 프리랜서인 자신밖에 그럴 사람이 없어 어머니를 돌보게 된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아직 뜨거운 내 유골함을 들고 이 길을 걷게 될 이가 단정하고 예의 바르고 이 일에 능숙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임신한 여자,  결혼을 앞둔 여자, 얼마 전에 이혼한 여자, KTX 해고 여승무원,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자, 방송국 파업에 참여한 여자, 성주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시위하는 할머니 등 사회 곳곳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삶을 사실 그대로 썼다. 그러는 바람에 남자들은 읽지 않을 소설이 된 것 같다. 

책 속 구절: 
애들 다 결혼시키면 진명 아빠랑 나랑 마음 편하게 산책하고 운동하고 가끔씩 여행도 다니자고 했었잖아. 평생 일만 했으니 이제 편히 쉴 날만 남은 줄 알았는데 또 손주를 맡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여전히 
사실 진명 아빠 장례 다 치르고 우울증 같은 게 왔었어. 우리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여행상품 방송 보는 거 좋아했잖아. 춘천, 여수, 제주도, 일본, 하와이...... 가고 싶은 데 메모하면서 손주들 조금만 더 키워놓고 가자고 했었지. 그래놓고 진명 아빠, 왜 그렇게 서둘러 갔어. 다들 이 정도면 호상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렇지가 않더라고. 나중에 같이 하자고 미뤄둔 일들이 너무 많아서. [...]
진명 아빠 그거 모르지? 내가 우리 딸 어려서부터 "엄마처럼 살지 마" 그 말 참 많이 했어.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고, 하고 싶은 일 찾아 열심히 하라고, 돈도 많이 벌어서 네 이름으로 집도 차도 가져보라고 했어. 우리 딸 좀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딸이 계속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한참 더 손주들을 키워야 할 것 같네. 
언젠가 딸이 회식했다고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서는 엄마 미안해, 하면서 펑펑 우는데 마음이 참 안 좋았어. 그게 왜 걔가 미안할 일이야. 걔는 내가 가르친 대로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근데 진명 아빠,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일곱시 반이네. 난 이제 밥해야겠다. (p.199~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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