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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우연의 음악

by mariannne 2012. 7. 9.

 

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 열린책들

 

소방수 나쉬는 뜻밖의 유산 상속으로 20만 달러 가까이의 엄청난 돈을 갖게 된다. 두 살 때 마지막으로 본 후 삼십 년 넘게 보지 못한 아버지가 남긴 것이다. 3만 달러가 넘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차를 사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휴가를 내서 2주간 자동차로 서부를 여행하고, 딸을 위해 신탁 자금으로 얼마간의 돈을 맡긴 후 그에게는 6만 달러가 남았다. 어린 딸의 엄마는 일찌감치 집을 뛰쳐나갔고, 딸은 지금 나쉬의 친누나 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중이다. 나쉬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일 년을, 돈이 떨어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자칭 도박의 명수’ 포시를 만나고 난 뒤 그의 인생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한량처럼 여행하다 다시 소방수로 복직했으면 좋았을 것을.

전직 소방수 나쉬와 도박의 명수 포시는 야박한 백만장자들과 포커를 한 후 빚이 생겨 이제 일용직 노동자 신세가 된다. 포시는 도박꾼에 허영심 많은 보통의 젊은이였지만, 나쉬에게는 뭔가 단단한 심지가 있는 듯 싶었다. 많은 돈을 갖고 있든, 빈털털이에 육체 노동을 하든 말이다. 돈이 있을 때에도 사치하지 않은 것처럼, 벽돌을 쌓아 올릴 때에도 하루종일 일을 한 후 저녁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인생... 지나친 책임감일까?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서른 네 살 생일에 그는 또 한 번의 극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나쉬가 유산을 받지 않았더라면? 여행에서 우연히 포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포시에게 뜻밖의 제안을 하지 않았더라면? ... 그렇게 우연히 맞닥뜨린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게 인생이다.

책 속 구절:

그는 처음엔 일류 음식점과 호텔들을 찾아다니고 질 좋은 와인을 마시고 줄리엣과 그 사촌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사다 주고 하면서 돈을 물 쓰듯 썼지만, 사실 나쉬에게는 사치를 하고 싶은 어떤 분명한 갈망도 없었다. 그는 늘 곤궁하게 살아온 터여서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유산을 상속받은 놀라움이 가시고 나자 다시 예전의 검소한 습관으로 돌아가 간단한 음식을 먹고 비싸지 않은 여관에서 자고 옷을 사는 것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때때로 테이프나 책을 사는 데 적지 않은 돈을 들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돈의 진정한 이점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만큼, 그는 자신과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2만 달러가 남을 때까지만 여행을 하고 그 다음에는 버클리로 돌아가 피오나에게 청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고 이번에는 정말로 그럴 셈이었다. (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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