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여행책

먼 북소리

by mariannne 2011. 7. 14.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ㅣ 문학사상사

이 책은 1990년대 후반에 처음 읽었고, 2004년에 다시읽었고, 이번이 세 번째 읽는 것이다. 7년 마다 한번씩 읽는 것인데,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와 그리스를 근거지로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하며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같은 장편 소설을 썼고, 당시의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냈다. '어느 날 아침,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떠났고, 이탈리아와 로마의 작은 마을에서 집을 빌려 지내며 아침에 조깅하고, 하루종일 글을 쓰고, 가끔은 외식을 하거나 콘서트장, 영화관을 찾고, 동네 사람들과 가볍게 교류하며 지낸 조용한 날들.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책 없이 여유로운 생활에 적응하며 지낸 하루키의 30대 후반에서 마흔으로 가는 나날들의 이야기에, 500쪽에 가까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한 줄을 몰랐다.   

책 속 구절:
평상시에는 그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죽음을 절박한 가능성으로서 일상적으로 받아들니는 것은-30대 후반의 건강한 남성의 대부분이 그렇듯이-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일단 장편소설에 매달리면 내 머릿속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음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두뇌 주변의 피부에 착 달라붙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그 근질근질하고 기분 나쁜 날카로운 손톱의 감촉을 항상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감촉은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을 끝내는 순간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다. 언제나 같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라고 계속 생각한다. 적어도 그 소설을 무사히 끝마칠 때까지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완성하지 않은 채 도중에 죽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하다. 어쩌면 이것은 문학사에 남을 훌륭한 작품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나 자신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소설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내 인생은 정확하게는 이미 내 인생이 아닌 것이다-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많든 적든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은 내가 나이를 먹고 소설가로서 경력을 쌓아감에 따라 더욱 강렬해지는 것 같다. 나는 때때로 침대 위에 누워서 숨을 죽인 채 눈을 감고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안 돼, 그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라고. (p.214~215)

그리스에는 참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배낭족이 찾아온다. 많이 오는 나라부터 정리해 보면 독일인(세계에서 여행을 가장 좋아한다), 캐나다인(세계에서 가장 한가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인(캐나다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가하다), 미국인(최근에는 많이 줄었다), 영국인(대개는 얼굴색이 나쁘다), 북유럽 3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일본인 정도이다. 일일이 자세하게 조사하거나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이런 순서가 아닐까 싶다. 독일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는 데다 가장 터프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캐나다 사람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배낭에 국기를 붙이고 있으므로 금방 알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독일 사람한테서 터프함을 뺀 느낌으로 어딘가 공상에 잠겨 있는 듯한 얼굴이다. 행동이 민첩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인상을 주는 얼굴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붙임성이 있을 것 같으면 네덜란드나 벨기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불편해(본인은 즐겁겠지만) 보이는 것은 영국 사람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인상으로 얼마든지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상대방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된다. (p.244~245)

'[리뷰]여행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으로  (0) 2012.01.16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0) 2011.12.23
가장 보통의 날들  (0) 2011.05.10
슈퍼라이터  (0) 2011.04.22
바람샤워 in 라틴  (0) 2011.03.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