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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사랑

by mariannne 2010. 2. 1.

사랑 (밀란 쿤데라 지음 | 김재혁 옮김) 

19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체코슬로바키아는 ‘농담’이나 ‘실없는 한 마디’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치명적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유부남은 아가씨들에 농을 걸고, 남자는 한 여자를 위해 지독한 거짓말을 감수하며, 사랑에 눈 먼 여자는 남자의 거짓말을 세상에 둘도 없는 진실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상황극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는 어리숙함, 공허함, 황당함으로 이어진다. 일곱 개의 작품 모두 ‘사랑’에 관한 것이지만, 그 어느 사랑도 위대하거나, 진지하지 않다. 전체주의에서의 '사랑'의 초라한 모습이 실망스러운가, 아니면 눈물겨운가.


책 속 구절:
“모든 인간의 삶은 각기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모르세요”, 그 교수가 말했다. “우리 모두의 과거는 인기 있는 정치가의 전기처럼 기록될 수도 있고 범죄자의 행적처럼 왜곡될 수도 있어요. 당신 스스로를 한번 살펴봐요. 당신이 당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까지 회의에는 별로 참석하지 않았고, 가끔 당신의 모습이 눈에 띄었을 때에도, 당신은 대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내 자신의 기억으로 당신은 진지한 안건을 다룰 때에 몇 번인가 느닷없이 우스갯소리를 해서 분노를 산 적이 있어요. 그 후 그러한 분노는 그때그때 금방 사그러들었지만, 이제 그것이 오늘 다시 과거에서 끄집어내져, 갑자기 다른 명쾌한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오. 아니면, 학교로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당신을 찾아오고, 그때마다 당신이 자리에 없다고 말하도록 한 것을 한번 상기해 보시오. 그게 아니면 당신의 최근 논문을 한번 봅시다. 그걸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 논문이 이데올로기상으로 좀 의심스러운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세세한 사항에 불과하지만, 이것들을 당신이 요새 저지른 범죄의 각도에서 해석하면, 모두가 당신의 성격과 당신의 입장을 설명해 주는 훌륭한 증거로써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오.” (p.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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