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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행책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by mariannne 2009. 11. 15.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김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서양에서 가장 통 큰 여자' 빅토리아 여왕이 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 번, 한 달 남짓 유급휴가를 주어 마음껏 책을 읽도록 했다는 '셰익스피어 휴가 Shakerspeare Vacation' - 이 책의 제목은 거기서 가져온 것이다. 하퍼스 바자 코리아 에디터인 저자에게, 유급은 아니지만 복직이 보장된 '1년 무급휴가'가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행은 몰타, 파리, 바르셀로나, 세비야, 리스본,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뮌헨으로 이어진다. 월급만 기다리는 직장인에게 이런 휴식이라니, 게다가 이렇게 멋진 기록을 남길 수 있다니... 유유자적하며 먹고, 마시고, 햇빛을 쬐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난생 처음 본 사람들과 어울리는 가운데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었겠지만, 그 때문에 김 경의 책을 기다린 나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큰 선물이 된 셈이다. 문학 뿐 아니라 음악, 미술, 패션, 요리 등 다방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김 경의 책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책 속에서 소개한 소개된 "열정" "리스본행 야간열차" "몰타의 매" "행복의 정복" 등이 다음 독서 목록에 올라가게 될 수도 있고!

책 속 구절 :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내가 종종 서울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을거라고 절망했던 꿈같은 시간들, 일상들을 보냈다.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고, 커다란 아치형의 나무 창문을 열면 그 신선한 계절의 기운에 내 몸의 모든 숨구멍들이 희열한다. 내가 먹고 마시고 잠드는 공간은 오래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고 집 밖에는 천지가 출렁이는 초록의 기쁨으로 넘실거린다. 인터넷이 안 되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는 아침이면 그날 지필 장작을 패고  그날 마실 물을 뜨러 간다. 때때로 식탁에 놓을 꽃을 꺾기 위해 들판을 헤매고 밤이면 촛불을 준비한다.
그리고 휴일엔 옆 동네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걸어서 산을 넘고 양말을 벗은 채 강을 건넜다. 그리고 너무나 단순하지만 너무 황홀한, 내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시골 레스토랑의 그 라비올리의 순수한 깊은 맛에 감동했다. 아, 산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는 서울에서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셰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았을 것 같은 이 사랑스러운 타워의 한 달 렌트비는 겨우 600유로 안팎이다. 게다가 가구와 식기가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다.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어떤 것도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내 삶을 결정짓는다. 무서운 일이다. 나는 그것에 저항하고 싶다. (p.74~75)

남자들은 대개 마흔이(어쩌면 서른 즈음부터) 넘으면 젊은 시절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들과 너무 쉽게 안녕을 고하고 속수무책으로 진부해진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결코 딜런 토머스처럼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는' 이들. 그런 이들은 여자로 하여금 느닷없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느끼게 한다.

죽음은 우릴 지배하지 못하네
죽은 자는 벌거벗은 채
바람과 달 속에 드러눕지
뼈가 삭고 가루가 되어 사라진 뒤
그들은 별의 친구가 되네
그들은 미쳐도 미치지 않고
바다에 빠져도 다시 떠오르며
연인은  잃어도 사랑은 잃지 않네
죽음은 우릴 지배하지 못하네
- 딜런 토마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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