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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by mariannne 2014. 6. 7.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은이) | 이세욱 (옮긴이) | 문학동네 | 2002-03-30 | 원제 Le Passe-Muraille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작가 마르셀 에메를 기리는 광장이 있고, 그 곳에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마르셀 에메의 대표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주인공이 몽마르트르 언덕에 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신이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된 ‘매우 선량한 남자’ 뒤티유욀. 그의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 초자연의 세계를 넘나들며 전개되면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벽으로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
 

‘생존 시간 카드”는 ‘식량과 생필품 부족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p.39)한다는,  공상소설이다. 매우 난해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설정이다. 생산성이 없는 사람들은 한 달에 단 며칠밖에 살지 못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무(無)’의 상태에 빠진다. 다음달 1일이 되면 모두 다시 깨어난다. 한 달 모두를 사는 사람이 있고,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다시 1일에 한 달이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생존 시간 카드’를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생겨나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는 한 달이 36일이 되기도 하고, 66일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한 달에 1천9백67을 사는 사람도 생겨났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위정자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천국에 간 집달리”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집달리 말리코른은 죽은 뒤 심판을 받는다. 재판관이 ‘네가 절망에 빠뜨린 홀어미와 그 자녀들의 눈물’이라며 커다란 통 속에 담긴 눈물을 내보이자, 말리코른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것 뿐이라며 항변하다. 그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신은 말리코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며 세상에 내려보내고, 이후 많은 기부와 인심으로 선행을 쌓고 다시 하늘나라에 간 말리코른에게, 성 베드로가 말한다. – “그래요. 선행이라곤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선행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집달리이면서도 ‘집주인들을 타도하자!’고 외쳤으니까요.”


 

책 속 구절:

 

앙투완도 친구들 못지 않게 그런 모험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더욱 기분 좋은 꿈들이 있었다. 만일 그 장화를 얻게 된다면 어머니는 더 이상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에 돈이 떨어지면, 앙투완은 칠십 리 장화를 신고 온 나라를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리옹에 가서는 정육점에서 고기 한 덩어리를 집어올 것이고, 마르세유에서는 빵을, 보르도에서는 채소를, 낭트에서는 우유를, 셰르부르에서는 커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또 어머니를 따뜻하게 해줄 좋은 외투를 한 벌 들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에게는 구두라고 해봐야 낡아빠진 거 한 켤레밖에 없으니까. 그것도 한 켤레 집어오면 좋을 듯했다. 방세 내는 날, 돈 160프랑이 없다면 그것도 마련해야 할 것이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먼저 큰 도시에 있는 상점에 들어간다. 상점은 되도록 부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야 한다. 손님들이 물건 살 돈을 손에 꼭 쥐고 있는 가게에서는 일을 벌이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인이 계산대에서 거스름돈을 받는 순간에 지폐를 가로챈다. 그러고는 그 부인이 미처 화를 내기도 전에 몽마르트르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남의 재물을 가로챈다는 것은 침대에 누워 상상하기조차 거북한 짓이었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것 역시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세 낼 돈이 없어서 관리인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집주인에게 언제까지 내겠다고 약속을 해야 할 때면, 남의 재물을 훔쳤을 때만큼이나 자기 자신이 수치스럽게 여겨지게 마련이다. (p.130~131, “칠십 리 장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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