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니 에르노 저/정혜용 역 | 문학동네 | 원서 : L'Occupation
“단순한 열정”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이다. 한 권으로 내놓기엔 너무 짧은 소설이다.
원제인 “L’Occupation”을 ‘집착’이라고 번역하긴 좀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한 제목이긴 하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남자친구 W의 동거 제의를 거절했고, W는 ‘다른 여자’와 살겠다고 얘기한다. W의 새 애인은 47세의 여교수다. 새 애인에 대해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는 W에게 집착과 질투를 느끼며 어쩔 줄 모르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한 소설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쓰지 않는다’는 아니 에르노답게 심리 묘사가 리얼하다. 하지만 이런 정서, 이해는 가지만,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책 속 구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당신한테 말 안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최근 자신의 생활에 일어났던 일을 주워섬기며 일과 관련된 소식을 알려왔다. 이 질문 아닌 질문에 내 표정은 곧 어두워졌다. 그가 그 여자에게는 이미 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곁에 있기 때문에, 평범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것은 그 여자였다. 나는 늘 두번째로 – 그것도 잘해야 –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즉각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긴 상태였는데, 그것이야말로 연인 사이를 공고히 하고 지속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한테 말 안 했던가?”라는 말은 나를 가끔씩 만나는 친구나 친지 그룹으로 분류해넣었다. 이제 그는 매일매일 자신의 삶을 털어 놓기 위하여 더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도, 나를 가장 먼저 찾지도 않았다. “내가 당신한테 말 안 했던가?”라는 말은 가끔씩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의 역할임을 일깨웠다. “당신에게 말 안했던가?”는 곧 당신에게 그걸 말할 필요가 없었지라는 소리였다.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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