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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달과 6펜스

by mariannne 2012. 5. 1.


달과 6펜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038
서머싯 몸 저/송무 역 | 민음사


런던의 한 증권 중개인이 어느날 갑자기 부인과 두 자녀를 떠나 파리로 간다. 이후 가족들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허름한 호텔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는데, 이 '스트릭랜드 가출사건'은 처음에 친지와 지인들에게 얘깃거리가 되었지만 이내 잊혀지고 만다. 모두들 그가 '여자'와 함께 도피했다고 생각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라는 이유를 듣고 나서도 믿지 않았던 건, 그의 가출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고, 또 그의 나이가 마흔이라는 탓도 있다.   

괴팍하고 비사교적, 비타협적인 독특한 성격의 스트릭랜드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고, 우연한 기회에 타히티로 떠나게 된다. 그 곳에서 다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서머싯 몸은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로 썼다. 고갱과 스트릭랜드의 삶이 꼭 같진 않지만 비슷한 점이 많아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보통 어른의 삶에서, 일상을 등지고 광기 어린 예술가로 변신한다는 것은, 그럴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단 한 번 뿐인 삶'일 것이다. 반면 풍족한 삶과 안정, 달콤한 일상의 향연들이 발목을 잡고 있어 그것을 떨쳐버리는 게 바보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인간의 삶이 얼마나 우연으로 가득 차 있는지, 물질이나 예술이라는 게 저마다에게 얼마나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책 속 구절: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자가 돌아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만해도 나는 아주 젊었고 상대방은 내게 중년으로 보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딴 건 몰라도 몹시 놀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그림을 그려본 적은 있나요?”
“어렸을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소. 하지만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서 장사일을 하게 만들었지. 일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소. 한 일 년 야간반에 나가 그림을 배웠어요.”
[…]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
“어째서 그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대답이 없었다. 눈길은 지그시 오가는 인파를 향해 있었지만 나는 그가 인파를 보고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나는 그려야 해요.”
(p.67~68)

 

[…] 그보다는 스트릭랜드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공상들을 외로운 영혼에 담고 자신의 상상력에 불을 지핀 미지의 섬을 향해 떠나는 데서 이야기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나는 지중해의 북서풍으로 물거품이 인 잿빛 바다와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프랑스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이 해안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을까. (p.256)

 

“운이 좋았던 거지. 아브라함에게는 좀 괴팍스러운 데가 있었던 것 같아. 그 가엾은 친구, 이제 완전히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지. 알렉산드리아에서 보건국 관리인가 뭔가 하는 하찮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네. 들리는 말로는 지지리도 못나고 늙은 그리스 여자하고 살면서 병치레하는 애들을 대여섯이나 거느리고 있다더군. 그러니 말일세, 머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닌가 보아. 인격이 중요하지. 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어.”
인격이 없었다? 다른 길의 삶에서 더욱 강렬한 의미를 발견하고, 반 시간의 숙고 끝에 출세가 보장된 길을 내동댕이치자면 아무래도 적지않은 인격이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갑작스러운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더더욱 큰 인격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는 피우고 있던 길다란 코로나 담배 연기를 호사스럽게 내뿜었다. “하지만 내가 덕을 보지만 않았다면 그런 식의 인생 낭비를 아주 안타깝게 생각했을 것이네.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p.2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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