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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김지운의 숏컷

by mariannne 2006. 12. 24.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저 | 마음산책)

‘나른하면서도 관능적이고, 아름답지만 왠지 슬픈 영화’를 만들고 싶은 김감독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세 편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달콤한 인생>은 아직 못 봤지만 그것도 좋아질 것이 뻔하고. 그래서 그의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참 읽고 싶었다. 짐작대로,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이 글 저 글 모아서 그런지 어떤 부분은 급조되거나 구겨 넣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은 그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경쾌한’ 글이다.

서른 네 살까지 ‘별로 돈에 구애받지 않고’ 백수로 지내다가 어느 날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겨 ‘시나리오 마감 일주일 전’이라고 쓰여진 “씨네21” 광고를 보고 며칠 만에 “조용한 가족”을 써냈다는 그는, 지금도 영화를 찍지 않을 때는 백수로 돌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소파에 딱 달라붙어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눈만 껌뻑거리고’(p.152) 빈둥거린단다. 짐작과는 달리 ‘원래 술도 잘 먹지 못하지만 그것보다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탓에’(p.59) 술 자리를 꺼려하며 어렸을 때는 ‘문득 알 수 없는 어떤 복받치는 서글픔으로 눈물을 쏟아내고 식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p16)든 적이 많았다. 뛰어난 유우머 감각과 재치로 밤새 술자리를 주도할 것 같은 그가, 냉소적인 말투로 대부분의 상황을 시큰둥하게 바라볼 것 같은 그가 말이다. 하긴, 영화 세 편을 빼면,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었던가.

이 책은 그의 살아온 날들과, 영화에 대한 그의 단상, 그리고 몇몇 배우에 관한 생각들, 네 편의 영화 제작기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에는 지승호의 ‘김지운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몇 년 전부터 써 온 글들은 언제 썼는지가 표기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게임>이란 음반 타이틀로 가요계에 컴백한 가수 박진영’(p.61)이라든지, ‘<장화, 홍련>은 현재 70퍼센트 가량 찍었다’(p.199)같은 구절을 보면서 이 책이 언제 출판되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2006년 11월 30일 1쇄 발행.

책 속 구절 :
13일의 금요일 밤. 가급적이면 일찍 들어가려고 맘을 먹었다. 근거는 없지만 이런 날에는 일찍 들어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가방과 노트북을 챙기고 일어서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조심스럽게 “누구세요?” 한다. 상대 쪽에서 많이 듣던 특유의 하이톤이 울린다. “감독님?” 나는 짐짓 “누구세요?” 했다. “감독님?” (여보세요.) “감독님 아니세요?” (침묵) “감독님, 어데 가셨나? 프하하하하!” (앗!) 송강호다. 그렇게 해서 13일의 금요일 밤 송강호를 만나 술을 마셨다. 진짜 무섭다. 송강호는 벌컥벌컥. 나는 찔끔찔끔 술을 마셨다. 눈치 보다가 대충 일어서려 할 때 봉준호 감독이 들이닥쳤다. 오 마이 갓. 결국, 그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술잔을 노려보면서.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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