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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비둘기

by mariannne 2014. 4. 20.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열린책들 | 2000-02-10 | 원제 Die Taube (1991년)

이 얇은 책에는 나이 쉰 셋의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의,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이틀이 담겨 있다. “평생토록 착실했고, 단정했고, 욕심도 안 냈고, 거의 금욕주의자에 가까웠고, 깨끗했고, 언제나 시간을 잘 지켰고, 복종했고, 신뢰를 쌓았고, 예의도 잘 지키며 살아”(p.59)온 조나단은 “빚이라고는 진 적이 없고, 남에게 폐를 끼친 일도 없고, 병에 걸렸던 적도 없고, 사회 보장 보험금에 신세를 진 적도 없고 […] 일생동안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말고는 절대로, 결코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p.59)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비둘기가 나타났다. 죽어가는 비둘기는 이미 집 앞 복도를 배설물과 깃털로 더렵혀 놓았고, 조나단은 그걸 보며 공포를 느꼈다. 

조나단은, 어린 시절 부모가 차례로 수용소에 끌려가자, 모르는 친척 집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지냈다. 성인이 되어 친척의 권유로 모르는 이웃마을 처녀와 결혼을 하고, 그 여자가 사내 아이를 낳은 후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친 후로는 “사람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 해야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p.7)을 낸다. 파리로 이사해 운 좋게 은행 경비원 자리를 얻었고, 이후 거의 20년 넘게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죽음 말고는 별다른 큰 일이 없을 거라는 안도감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에게, 현관문 바로 앞에 떨어진 비둘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사건으로 ‘죽음’까지 생각했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책을 읽으며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무탈한 것이 최고의 미덕인 그의 인생에서, 더러운 비둘기는 너무 큰 시련이 되었고, 작가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독자가 이해하도록, 너무나 잘 설득했다. 조나단을 당황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그는 달라졌을까? 그러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인생에서 별 일 없이 산다는 것도 큰 축복인 듯 싶으니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요즘 뭘 할까? 한 때 몇 권의 책을 낸 후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는,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이 소설의 “조나단 노엘”처럼, 아무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아 은둔 중이신건가.  이 책은 16년 전에 읽었는데,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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