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통 (장승욱 저 | 박영률출판사)
대한민국 애주가
이 책은 술을 좋아하는 대한민국 한 남자의 인생 기록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먹기 시작한 술은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사연과 끈끈한 우정과 토악질과 후회를 남겼다. 술먹고 저지른 일에 대해 말하자면 책 한 권 쓸 사람이 허다하겠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것이다. 저자의 기억력과 글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그 사연들은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책을 읽는 동안,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는데, 하나는 이렇게 술을 마시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 하는 것이고, 하나는 과연 이 남자가 결혼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정도로 술을 먹는 사람을 나만해도 적어도 세 명은 알고 있다.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만 세 명이고 간접적으로 아는 사람까지 친다면 십 수 명은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술에 관대한 나라니까 말이다. 두 번째 궁금증도 풀렸다. 책 중간쯤 가면 “광주에서, 강진에서, 불원천리 파주까지 내 집을 찾아올 형님들, 아우들에게 무엇을 대접해 보낼 것인가. 육해공군, 다시 말해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회, 닭고기 중에서 뭣을 대표선수로 식탁에 올릴지를 놓고 나와 아내는 고민을 거듭했다”(p.272)는 대목이 나오고, 다행히도 결혼은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스물 두 살에 술 먹고 난동을 부려 앞니를 몽땅 틀니로 바꾸고 필름도 끊기지 않고 최고 8병의 소주를 마신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저자 약력을 보면, 연세대 국문과 출신에 조선일보 기자 생활 6년에 SBS 방송국 8년의 경력까지 있는 멀쩡한 사람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 속 구절 :
첫날, 점심 겸 저녁을 지어 먹은 다음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지기까지의 막간을 이용해서 삼행시 짓기 대회가 열렸다. 시제는 ‘백마강’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섬광처럼 떠오른 영감에 따라 석 줄을 단숨에 완성해서 제출해 놓고 장원은 떼어 논 당상이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장원은커녕 차하도 장려상도 하다못해 입선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장원은 양주(조니워커였다) 한 컵, 차하는 오가피주 한 컵, 장려상은 맥주, 입선은 소주 한 컵씩이 상으로 주어졌으니 어차피 웃자고 치른 행사였건만, 내 걸작의 진가를 몰라주는 무지몽매한 회원들이 나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그래서 상품 축에도 못 들 만큼 지천으로 널려 있는 막걸릿병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멀찌감치 모래밭에 나앉아 혼자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아래에 적은 것이 그때 쓴 삼행시다. - 백미 한 되 씻어 밥 지어 나물 무쳐 / 마누라 자식새끼 먹여 줄줄이 재워 놓고 / 강가로 오입 나가는 사내의 허전한 등짝 (p.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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