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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아름다운 하루

by mariannne 2011. 12. 13.

아름다운 하루
안나 가발다 저/허지은 역 | 문학세계사 | 원서 : L'Echappee belle

안나 가발다의 짧은 소설. 프랑스에서는 이런 짧은 소설을 ‘크레이프’라고 한단다. 가볍게 먹기 좋은 간식인 크레이프를 소설에 비유한 것이다. “아름다운 하루”는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사남매-시몽, 롤라, 가랑스, 벵상-가 사촌의 결혼식을 계기로 모두 모여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로 문장은 짧고 간결하며, 소설 속 남매들이 보낸 하루는 맑고 눈부시다. 안나 가발다는 2009년 프랑스에서 가장 책이 많이 팔린 소설가 10명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책 “아름다운 하루 L'Echappee belle”가 재출간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 해 동안 그녀의 책이 모두 78만여 권 팔렸단다. 프랑스 사람들은 왜 안나 가발다를 좋아하는 걸까?


책 속 구절:

가리비 껍질에 담아 낸 마요네즈에 버무린 야채 과일 샐러드, 꼬챙이에 끼워 통째 구운 양고기와 마요네즈 소스를 뿌린 튀김, 염소 치즈에 생크림케이크를 세 조각씩 머곡 나자 모두들 기 마크루와 그의 멋진 오케스트라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마냥 행복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눈도 활짝. 오른쪽에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코디언으로 연주되는 스트라우스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왼쪽에서는 아저씨들이 피둔 빵가게 앞에 새로 생긴 일방통행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그림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아름다웠고 더 소박했다. 맛깔스러운 풍경이랄까. (p.118)

그리고 마가렛 꽃과 스위트피가 만발한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리는 나의 언니 롤라…… 언니의 등, 커다란 모자, 대담하게 그 주위를 날고 있는 하얀 나비, 핀을 꽂은 언니의 머리와 목덜미, 이혼이라는 큰일을 겪느라 앙상해진 팔뚝, 그리고 물감을 닦아내기 위해 바지 밖으로 꺼낸 티셔츠 자락. 조금씩 물이 들어가는 새하얀 면 팔레트……
이번만큼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피곤한 탓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토록 감상적인 가운데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저 세 사람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 남겨진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
저 세 사람이 나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지 어언 삼십 년…… 저들이 없다면 난 어떻게 될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삶이 우리를 갈라놓는 순간이 오고야 말겠지?
산다는 건 그런 거니까. 시간은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기 마련이니까.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p.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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