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손아람 저 | 들녘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했고, 멘사(Mensa) 회원이기도 한 손아람은 힙합가수 출신의 소설가다. 서울대나 멘사 따위의 이력이 먼저 언급되는 걸 본인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독자들에게는 그의 첫인상을 결정지을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고, 그 인상은 그의 두 번째 소설 “소수 의견”으로도 이어진다. 서른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게 놀랍기만 하기 때문이다(언빌리버블!). 그는 얼마동안 이 책을 준비했을까? 2009년 1월에 생각했을 것이고, 2010년 봄 이전에 탈고했어야 하니, 기껏해야 일 년 아닌가?
책머리에는 “사건은 실화가 아니다. 인물은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적혀 있어 소설이 논픽션이 분명하다는 반어적 암시를 준다. 소설에서는 서울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구역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던 철거민 소년이 맞아 죽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구타한 20대 초반의 전경을 폭행한 치사사건이 발생한다. 검찰은 소년을 죽인 건 전경이 아니라 철거용역업체 직원이었다고 하지만 국선변호인 윤변호사(이름없는 '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온갖 구태의연한 협박과 회유와 거들먹거림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타협과 금전거래도 일어나며 그 와중에 물론 인간적인 장면도, 정의로운 자도 등장하는 법정휴먼드라마다.
용산참사와 닮은 이 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한 편의 법정영화와 같은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도 그렇지만, 문장 또한 군더더기가 없이 잘 읽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미미한 역할이지만, 흰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100킬로그램이 넘는 비대한 몸짓의 소유자이면서 '너무 잘난데다가 그 사실을 감출 만큼 겸손한 사람이 아'닐 뿐 아니라, '감히 상상력이 미치지 않는 달변가'인 염만수 교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책 속 구절:
나는 거짓말을 요구했다. 추악한 계략을 짰다. 그러면 이길 수 있었다. 나는 배웠다. 내 스승은 검찰이다. 작년까지 나는 순진한 연수원생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변호사다워졌다. 결국 나는 변호사가 될 것이다.
구치소를 나설 때 낯을 익힌 교도관이 나를 보고 웃으며 한손을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콜라 캔이 들려 있었다. 어이구, 또 오셨습니까. 이제 나는 비품처럼 구치소와 잘 어울렸다. (p.224)
"박재호 씨는 아드님을 잃었어요. 5천만 원으로 끝내선 안됩니다. 어떤 액수의 합의금으로도 턱없이 모자라요. 저라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저라면 몇 년이고 매달릴 겁니다. 이 사건은 판결까지 가야 해요. 1심에서 안 되면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법대 교과서에 실려서, 100년 동안 국가와 그 대리인의 오명이 낙인찍히도록 해야 돼요. 만일 패소한다면 판사의 이름까지도 말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법을 공부할 때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배우게 될 겁니다. 그게 박재호 씨가 그 사람들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징벌입니다. 멈추지 마세요. 누군가 박살이 날 때까지." (p.244)
청구금원이 11억 원이라면 소송인세비용만 해도 상당했을 것이다. 원고들은 재개발이 필요한 낙후지역의 부동산 소유자들이었으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터다. 나는 적어도 이들이 가진 피해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 (p.247)
“변호인 먼저 하시죠.”
나는 걸어 나갔다. 4번 배심원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저 개새끼. 법정을 나설 때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으스대는 얼굴. 이 법정에서 자신만이 정의롭고, 자신만이 솔직하고, 자신만이 실천주의자라고 공표하는 확신에 찬 얼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 왔다. 집중이 안 됐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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