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 년에 책을 얼마나 읽으십니까?’라는 질문 다음에는 으레 ‘학업이나 직업상 필요해서 읽는 책’과 ‘잡지류’는 제외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삶에 별 도움은 안되지만, 정서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오직 좋아서 읽는 책, 말하자면 문학이나 비소설 에세이가 대표적인 것으로, 왠지 청소년 문학 전집이나 베스트셀러를 강요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독서란 무엇일까. 시간 때우기든, 공부를 위해서든, 읽고 싶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닌가. 위의 조건으로 보자면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필요에 의해(물론 자신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책을 사다 읽는 다치바나식 독서 역시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 다치바나는 3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한 고양이 빌딩의 주인이며 자타가 인정하는 독서광이 아닌가.
2. 대학 졸업 이후로는 픽션에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저자는 논픽션이 워낙 흥미롭기 때문이라고는 했으나 이미 중학교 3학년때 웬만한 세계 문학을 섭렵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소설과 멀어진다. 사회인이 되면서 머리가 복잡하여 더 이상 그리스 로마 고전이나 셰익스피어, 도스트예프스키를 읽기 힘들다. 소설로 치자면 마르께스나 밀란 쿤데라처럼 현대 작가들도 많으며 직업 관련한 서적들 또한 수없이 접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치바나의 ‘더 이상 소설 흥미 없음, 읽어본 지 너무 오래됐음’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3. ‘진심으로 철학을 하려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그리스어 4주간’, ‘라틴어 4주간’이라는 책을 사서 4주 동안 공부했다는 저자. 말하자면 어떤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우선 책부터 펼쳐 들고, 책을 다 읽어야만 무언가를 공부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와 사상, 예술, 정신과학 이외에도 과학 관련 저서로 우주, 분자 생물학, 컴퓨터, 원숭이학, 의학, 생태학, 첨단 과학 등을 테마로 한 글을 쓰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수많은 책 더미에 파묻혀 지식을 쏙쏙 뽑아먹는 사람.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부러워할 것 같다.
4. 이 책은 ‘책’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왔다. 아마도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서재 결혼 시키기> <독서의 역사> <서가에 꽂힌 책> 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도 관심이 갈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책을 읽으라는 내용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A대가 선정한 청소년 교양서 100선 따위를 검색해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의 대가라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독서를 하나… 궁금해서 엿보는 목적이면 좋겠다.
5. 어떤 이유에서건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100%는 아니겠지만) 흥미롭게 책을 읽게 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쓴 ‘나의 독서를 되돌아본다’라는 건방진 독서 체험기도 그렇고 (세계문학 전집에 나와있는 목록은 다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본 서고 신축기와 비서 공모기도 흥미롭다. 무대미술가 세노 갓파의 고양이 빌딩 스케치도 재밌다. 이 사람의 오만한 글투와 지적 호기심을 허영이라 생각해 거북해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환갑이 지났으며 글을 써서 살아가는 사람이 이 정도의 지적 수준과 책에 대한 집착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뭐 그리 놀랍거나 대단한 것이 있을까. 분명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많을 거라 믿는다.
6. 마음에 걸리는 것 한 가지는 비싼 책값이다. 출판사 쪽에서 보자면 수치타산이 맞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하드 커버일 필요가 있으며 그 때문인지 몰라도 1만원이 넘을 필요가 있을까. 내용이 좋아도,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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