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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나는 명품이 좋다

by mariannne 2002. 2. 23.

나는 명품이 좋다
(나카무라 우사기 | 사과나무)

엄청난 낭비벽으로 '쇼핑 중독증'이라 진단받은 이 일본 여성은 주민세에 의료보험료를 오랫동안 내지 못하고 있으며 목숨보다 소중한 2백만, 혹은 3백만엔의 '카르티에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겨 90만엔이나 이자를 물고 있지만 절대 명품을 포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달려 언제나 거절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버려 스스로 '바보같으니라구!' 하며 머리를 쥐어 뜯지만, 곧 '세상아, 마음껏 비웃어라. 나는 쇼핑할테니'라고 외친다.

딱 1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한 여성의 황당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쇼핑 이야기에, 읽는 내내 웃음이 난다. 북유럽인의 신체에 맞기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불편한 12만엔짜리 의자, 3천엔짜리 쇠고기 통조림, 날씬해지는 바디 샴푸에 1만엔짜리 초콜릿, 38만엔 샤넬 재킷 등 그녀의 쇼핑 체험은 다양하지만 대개는 실패라 고백한다. 그래도 꿋꿋이 쇼핑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약간의 교훈을 얻는다면, 첫째,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주간문춘'에 실리며, 단행본으로까지 나온다는 사실! 그리고 둘째, 작가는 명품광이라 손가락질 받는 일본 여성의 표상, 따라서 명품 붐 시대를 맞이한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성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는 사실.

일년에 옷값으로만 2천만엔을 썼다는 작가는, 판타지 소설가로 활동 중이라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라도 썼단 말인지! 시종일관 자신은 빚쟁이라며 궁상을 떨지만, 그 정도의 소비가 가능하다는 건... 정말이지 놀라운 여자다!

책 속 구절 :
"그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산인데 비가 새다니요?" 나의 소박한 질문에 점원은 후후 하고 웃으며, "하지만, 프랑스 제품이잖아요. 아시다시피 그쪽은 일본만큼 비가 오지 않아요." 어 그런가? 이전에 내가 프랑스에 갔을 때에는 머물러 있는 동안 내내 비가 내린 것 같았는데. 아니, 백 보 양보해서 프랑스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여기는 일본이 아닌가. 일본에 살고 있는 일본인에게 '비가 많이 오면 새는 우산'같은 것이 과연 상품가치가 있을까? 물론, 있다. 왜냐, 천하의 샤넬이니까. 예를 들어 비가 새건, 우산살이 꺾어지건, 아니면 원래의 샤넬 우산을 잃어버리고 다른 접는 우산으로 대용하건, 그 샤넬 마크가 붙은 가죽 케이스를 어깨에 매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우산까지 샤넬을 써요. 오호호!" 하고 소리내어 웃으며 걷는 여왕님에게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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