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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장정일의 독서일기 5

by mariannne 2002. 2. 11.

장정일의 독서일기 5
(장정일 저 | 범우사)

작가라는 직업 덕분에 하루종일, 매일매일 책을 읽어도 좋은 그가 부러울 따름이다. 진작에 나온 그의 책 속에서, 공무원이 되어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사는 것이 꿈이라 말했던 것처럼, 그는 (그 이상으로 더 많이) 책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의 책 일기에는 감동과 즐거움보다는 비판과 꼬임이 더 많이 등장하기 때문.

1993년 장정일의 독서일기 첫번째 작품이 나온 이래 매년 꼭꼭 한 권씩 책이 나왔다. 이번 작품은 1998년 5월 일기 이후 거의 4년 만에 나온 것. 그래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5는 이전 것들보다 좀 더 지루하다. 읽은 책들도 이전보다 더 많이 생소하고 중간중간 백설기의 건포도처럼 박혀 있던 그의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들이 사라진 것도 한 몫을 한다. 장정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아쉬울 듯. 대신 최근에 나온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를 보면 위안이 될 것이다.

이번 책에서는 스테픈 킹의 "미져리", 휴버트 셀비 2세의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죤 그리샴의 "펠리컨 브리프", 스코트 스펜서의 "끝없는 사랑", R. 네이턴의 "제니의 초상", 블라디미르 나브코브의 "로리타", 정비석의 "자유부인", 나인하프 위크스의 원작인 "9 1/2 - 어느 캐리어 우먼의 고백",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꿈의 노벨레" 등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을 읽은 그의 느낌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이것은 일부분.
어느 시기의 폴 오스터에 대한 편식 또한 기분 좋은 일이었고, 역시나 역사와 권력에 대한 독설또한 시원했다. 1998년 여름부터 2001년 가을까지의 글들이 한 권에 끝났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한 책들을 찾게 되는데, 아직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그가 인터넷 시대에 대한 생각을 그의 방식대로 풀어낸 글 또한 썼으면 하는 바램.

책 속 구절 :
1. 24. 폴 오스터의 <<거대한 괴물>>(열린책들, 2000)을 읽다. 1) 촉망받는 소설가가 테러리스트로 변하는 심리적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이 소설은, 우연과 무의식에 대한 복잡한 심리적 기술이기도 하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실제로는 우연이 아니라, 무의식에 의해 선택된 필연이다. 그래서 그 우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사건'이 된다. 2) 이 괴상한 인생유전담은 당사자가 없는 상태로 기술된다. 기술자에게 주어진 것은 실종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친구나 애인들 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한 인물의 초상을 그리거나 역사를 기술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모든 역사와 전기에는 거짓과 진실이 섞여든다. 3) 자기 정체성을 심각하게 파고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반전주의자였던 소설가는 그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테러리스트가 된다. 존재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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