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조안리의 책이 나왔다. 우연히 발견하게 됐고, 무척 반가왔다. 소리소문 없이 발간된 걸 보면 출판사 쪽에서 베스트셀러로서의 기대는 없었던 걸까… 책 표지와 제목에서부터 뭔가 담담하고 일상적이며,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암시한다. 작가 조세현이 찍었다는 조안리의 표지사진이 무척 아름다울 뿐이다.
책의 내용은 크게 몇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딸의 특별하면서도 당당한 결혼식과 신혼여행. 한 해 동안 그녀에게 불어 닥친 육체적 역경(발목 부상과 뇌출혈로 인한 고통스러운 뇌수술 등), 지인 덕에 만날 수 있게 된 보스톤의 작은 선원(禪院), 탈북자들의 ‘난민’지위부여를 위한 투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말라야에서의 고마운 아침.
그녀 특유의 모범적이고 조리 있는 문체가 매력적인 “조안리의 고마운 아침”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이 책을 읽는 이라면 그녀의 전작 4권을 모두 읽은 사람들이 아닐까. 그 책들처럼 흥분과 설레임을 주는 내용은 분명 없다. 하지만 삶을 여유롭게 내다볼 줄 알게 된 그녀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 좋은 책. 서점에서 훑어보았을 때 별 내용이 없어 보여 실망했으나(왠지 책을 내기 위한 책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막상 책을 펴 들고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하니 역시, ‘조안리라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될 것 같다.
책 속 구절 :
성미는 정말 그렇게 결혼식을 해치웠다. 가끔씩 미국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 그대로, 가까운 친구 한 명만 증인으로 참석시킨 채, 뉴욕 시청의 공무원 앞에 뻘쭘히 서서 15분 만에 후다닥 해치우고 나서는, 카페 하나를 빌려 친구들과 밤새도록 먹고 마시는 그런 결혼식. 성미가 결혼식 기념이랍시고 보내온 몇 장의 사진들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물론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혼식이란 어차피 요식행위일 뿐이다. 나 역시 이런 결혼식을 했다. 삼십 년 전 시카고의 한 성당에서, 축복해주는 이라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하느님 한 분만을 모시고, 켄과 단 둘이서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때는 사진을 찍어 줄 사람도 없이 켄과 내가 서롤르 번갈아가며 찍어주는 바람에 철없이 활짝 웃고 있는 독사진만이 우리의 결혼기념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나의 결혼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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