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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by mariannne 2002. 2. 2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스테판 외에 각색, 그림 / 마르셀 프루스트 저 | 열화당)

어른이 된 남자가, 달콤하고 부드러운 마들렌느 과자를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어린 시절의 그리운 기억이 깨어났다는...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그토록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지만, 쉽게 읽어낼 수 없어 더더욱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기억되는 소설을 써 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나 역시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빼어들고서는 몇날이나 팽개쳐 둔 후 다시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만화로 나온 이 책이 더욱 반가웠으니...

프랑스에서 만화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대접을 받는 듯하다. 진지하게 잃어내야 할 소설이 만화화된다면, 보통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쉽고도 '명랑'한 만화가 될 거라 생각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졌다는 정도에 그친 것. 물론 그것은 원작의 힘이기도 하다. 따라서 만화라고 책장을 휙휙 넘기기에 적당한 것이 아니며, 한 번 읽고 내용이 가슴에 콕 박히는 것도 아니다. 오래 전에 읽었으나 최근 다시 읽으니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이다.

1999년부터 해마다 한 권씩 12년에 걸쳐서 모두 열두 권 분량으로 내 놓을 것이라는 이 시리즈의 첫번째 제목인 "콩브레"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드나들었던 시골 마을의 이름이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막연한 슬픔에 빠져있는 이모, 그녀에게 세상이야기를 전해주는 프랑소와즈, 일요일마다 이모를 찾아오는 을랄리, 여배우와 화류계 여자들을 많이 알고 있는 증조부 아돌프 등 어린 시절의 마르셀이 기억하는 조용함 속의 자잘한 사건들과 사람들.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것들의 도입부일 뿐이라 하나, 이 한권으로도 따뜻하고도 깊이있는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책 속 구절 :
여름날 저녁, 평온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사람들이 급히 몸을 피할 때, 나는 홀로 비를 맞으며 황홀경에 잠겨 메제글리즈 쪽을 생각해 보곤 했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로질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이렇듯, 내가 밤에 잠이 깨서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콩브레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나 에전에 지낸 슬픈 불면의 밤들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최근에 차 한 잔의 맛(콩브레에서는 '향기'라고 불렀는데)에 의해 되살아난 무수한 과거의 나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지내게 되었다. 잠이 깬 후 아침이 가까워지면, 내가 정말로 잠에서 깨어났는지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되었다. 전날 내가 어느 방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기억해내, 잠이 깬 후 어둠 속에서도 내 주위로 방의 윤곽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어둠 속에서 그려 본 처소의 기억이 과거에 지냈던 무수한 처소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로 전날의 그 자리를 되찾아 겹쳐지고 나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처소들은 커튼 위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아침 햇살에 쫓기어 이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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