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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파리로 가다

by mariannne 2004. 1. 23.


파리로 가다
(아사다 지로 저 | 대교베텔스만)

“철도원” 때문에 아사다 지로가 좋아져서 “장미 도둑” “낯선 아내에게” “은빛 비” “프리즌 호텔” 등을 읽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소설을 잘 안 읽게 된데다가, 게다가 두 권이나(!)되는 소설을 읽은 적이 거의 없지만, 작가 때문에, 그리고 닷새나 되는 설 연휴 덕분에 “파리로 가다”를 읽게 됐다. 표지에 정확히 적힌 것처럼 ‘유쾌한 장편소설’.

설정부터가 아주 흥미롭다. 도산 직전의 여행사에서 기획한 9박 10일간의 파리 여행. 한 팀(포지티브)은 백오십만 엔, 또 다른 한 팀(네거티브)은 이십만 엔이라는 엄청나게 차이 나는 돈을 내고 같은 호텔에 묶게 된다. 여행객들은 저마다 한아름의 사연과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데, 이를테면, 불륜 관계인 상사로부터 배신 당하고 동시에 직장에서 정리해고 된 30대 후반의 여성, 공장 부도로 수억의 부채를 지고 자살을 하기 위해 파리를 택한 부부, 은둔하여 소설을 마무리하려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편집자, 대박을 만난 졸부와 그의 연인(이상 포지티브 팀), 떠나버린 프랑스 애인을 찾기 위해 여행에 가담한 트랜스젠더와 국제 카드 사기단 부부,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전직 경찰관, 베스트셀러 작가를 몰래 쫓아온 각기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들 등이다. 삶이란 얼마나 피곤한 여행이란 말인가.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쳐도 할 수 없는 온갖 것들로 인해 힘빠질 때가 많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살맛나는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뻔한 해피 엔드지만, 가슴이 따뜻해지기 때문에 좋은 소설. 여행객 스토리와 겹쳐지는 쁘띠 루이 이야기는 왠지 너무 길고 지루한 듯도 싶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소설이다.

“철도원”을 가장 먼저 읽고 나서 그 이후 읽은 소설들은 “철도원”만큼의 감동은 없지만, 실망을 한 적도 없다. 믿음이 가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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