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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

모래의 여자

by mariannne 2005. 11. 24.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지음 ㅣ 민음사)

이야기의 설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휴가를 이용하여 기차를 타면 반나절 걸리는 해안으로 떠난 채 소식이 끊어진 것이다. 수색 신청서도 신문 광고도 모두 헛수고였다.” -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피츠제럴드 단편선 중 “기나긴 외출”의 첫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 루이 16세가 발뤼 추기경을 육 년이나 연금했던 쇠로 만든 옥사(獄舍)에 대해 언급한 뒤에는 비밀 지하 감옥과 그런 공포감을 자아내는 일들에 대해 애기를 나눴다. 나는 후자 중에 몇 개, 즉 사람 하나를 던져 놓고 무한정 기다리게 만드는, 깊이가 30~40피트가 되는 물이 마른 우물들을 구경한 적이 있다. 풀먼식 열차의 침대차도 악몽으로 느껴질 만큼 폐쇄 공포증 경향이 있는 나에게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다.”(p.137) 하일지의 “경마장에서 생긴 일”은 또 어떤가. <사단법인 한국교사휴양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떠난 교사 K. 경마절 시절을 마감하여 썼다는 하일지의 장편소설 속 K가 처한 상황은 “모래의 여자”에 나오는 교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25시”의 요한 모리츠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발버둥 치는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감금이지만, 어쩌겠는가. 더 이상 도리가 없는 것을. 누군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가. 그리하여 ‘자유’를 얻지 못한 인간은 ‘죽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할 것인가.

세계문학전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모래의 여자” 역시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갖추었다. 몇 년 전에 읽으려다 말았는데, 왜 읽다 말았는지 모르겠다. 읽다 보면 아마도 현재의 자신의 존재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조직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갑갑하지만, 한편으로는 눈물겹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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