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은이)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07-16
조선시대라고 예외일까. 남녀가 함께 살아가니 스캔들도 있고, 치정 사건도 있고, 동성 연애, 근친, 색광증 이야기도 생겨난다. 제목처럼 '조선을 뒤흔든' 사건은 몇 개 안되지만, 어쨌거나 조선시대에도 흥미로운 연애 사건은 있었다.
세조의 후궁이면서 과감하게도 그 조카 귀성군 이준에게 언문으로 연서(戀書)를 써 보낸 궁녀 덕중. 세조가 '호방한' 성격이긴 하나 그 잔혹함은 여전하다는 걸 몰랐을까? 편지를 전달한 환관들은 박살형(죽을 때까지 때리는 형벌)을, 덕중 자신은 교수형을 당한다.
여자의 미모를 평가할 때 인색한 사관들이 "조선왕조실록"에 자색이 있다고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미인(p.32) 어리.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이 한 눈에 반해 상사병에 걸릴 지경이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그녀를 들일 정도였다. 양녕이 동생 충녕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광인 흉내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양녕대군이 '사랑' 때문에 왕위를 포기한 것이라 결론내렸다.
보통의 시골에서 일어난 절절한 사랑 이야기도 있다. '인근에서 모두 탄복할 정도로 아름답고 당찬' 양갓집 규수 가이는 사노비(私奴婢) 부금과 사랑에 빠져 혼인한다. 양반의 딸은 천민과 혼인을 할 수 없다는 법에 따라 경상도 관찰사가 벌을 내리는데, 둘을 떨어뜨려 놓는 것은 물론이고, 가이를 왜관에 있는 왜인 손다에게 보내 억지결혼까지 시킨다. 얼마 후 손다가 가인을 학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금이 찾아가 그를 죽이고, 이에 부금은 참수형을, 가인은 교수형을 당한다. 책에 쓰여있는 것처럼 둘이 "죽어서도 우리는 같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이는 부금이 먼저 죽으면 그의 시체를 수습한 후에 자신을 죽여달라 청했다고 하며, 자신이 죽으면 부금 옆에 묻어달라 부탁했다고 하니, 둘에게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이승보다, 땅에 묻혀서라도 함께 있는 저승이 나았을 것이다.
암행어사 이광덕이 함흥에 갔을 때 만난 일곱살 소녀 가련은 기루(기생집)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소녀였지만 총명함이 남달라보였다. 이광덕은 소녀에게 시를 지어 선물했고, 이때부터 가련은 그를 사모하며 잊지 못했다. 그녀는 기생이 된 후에도 정조를 지켰고, 후에 이광덕이 유배생활을 할 때 만나 뒷바라지를 시작한다. '육체관계가 없는 순수한 사랑'을 나누던 둘은 짧은 만남 이후 다시 헤어졌고, 얼마 후 이광덕이 병으로 죽자 가련은 자결한다.
이외에도 남자를 밝혀 수십 명의 선비를 상대한 사대부집 규수 유감동, 역시 자유로운 성생활로 유명한 어을우동, 세종대왕의 며느리로 동성애를 의심받은 세자빈 봉씨 등 목숨을 걸고 본능질주를 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음모이고, 전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책 속 구절:
가련은 이광덕의 제사상을 차린 뒤에 소복을 입고 "출사표"를 불렀다. 그러잖아도 비장한 "출사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련의 애통한 심정이 실리니 마치 혼백이 노래를 하는 듯이 애정하고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가련의 "출사표"가 전날보다 더욱 애절한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마을 사람이 없었다. 가련은 "출사표"를 모두 부른 뒤에 자결하고 말았다. 함흥 사람들이 가련을 불쌍하게 여겨 장사를 지내주었다.
'애절하구나. 어찌 이런 기구한 사랑이 있단 말인가? 내가 비석을 세워 여협의 혼백을 위로하리라.'
여러 해가 지났을 때 어사 박문수가 그 이야기를 듣고 '함관여협가련지묘咸關女俠可憐之墓'라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p.140)
조선시대에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간음한 일이 의외로 많이 일어났다. 조선이 예의의 나라이고 충효의 나라여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살인사건을 집대성한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을 살펴보면 이 생각은 여지없이 깨진다. 조선은 부권의 나라였다. 아버지의 존재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첩을 여럿 거느렸다. 첩은 비교적 젊은 편이어서 큰아들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도 흔했다. 광해군 때의 문신 정인홍의 문인으로 영의정 유성룡을 탄핵하여 남인 정권을 무너트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홍도는 광해군 때는 서인 정권까지 붕괴시키는 데도 악역을 맡았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 그의 큰아들 문신이아비의 첩과 간음하면서 경상도는 물론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빠트렸다. (p.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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