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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소설4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원제 Aimez-vous Brahms...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 민음사) 삼각, 혹은 사각 관계의 사람들 TV 미니시리즈의 제목처럼 조금 낯간지러운 이 소설의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브람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래서 프랑스에서 브람스 연주회에 상대를 초대할 때 이 질문을 꼭 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아는 게 좋겠다. 실제로 평생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가 열 네 살 연상인 클라라 슈만을 수십년간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도 이 소설의 제목이 "브람스..."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에는 서른 아홉의 폴과 그 보다 몇 살 더 많은 연인 로제, 그리고 폴에게 빠져버린 스물 다섯의 시몽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마음은 폴에.. 2008. 6. 29.
불쏘시개 불쏘시개 | 원제 Les Combustibles (아멜리 노통브 지음 | 열린책들) '어떤 책을 가장 먼저 태울것인가'의 문제 전쟁이 일어나고, 고립된 방 안은 냉기로 가득찼다. '책이 한 가득 꽂혀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서가'와 나무 의자, 무쇠 난로만 남아있고, 세 명의 등장인물이 무대를 오간다. 침대와 책상, 안락 의자는 모두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이제 남은 땔감이라곤 냉기를 달래줄 의자와 벽면을 채우고 있는 책들. '무인도에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책을 가장 먼저 태울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이 책은 '가장 아멜리답지 않은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그녀의 소설은 대화 투성이고, 이 희곡 역시 마찬가지. 다른 몇몇 소설과 마.. 2008. 3. 31.
모뻬루 마을 사람들 모뻬루 마을 사람들 | 원제 Vieille France, Confidence africaine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 솔출판사) 저자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회색노트"로 잘 알려진 작가다. "회색노트"를 포함해 총 8부작인 "티보가의 사람들"로 노벨상을 수상했고(정확히는 7부 '1914년 여름'), 이 책 '모뻬루 마을 사람들"은 대하소설을 쓰는 중간에 '단숨에 써 내려간' 작품이라고 한다. 모뻬루 마을의 우체부 '주아노'를 중심으로,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기록한 것인데, '한 시골 마을'이라는 평화로운 단어들이 무색하게시리, 이 책에 등장하는 촌부들은 이기적이고, 사악하며, 추하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가 '단숨에' 쓴 것처럼, 독자 .. 2008. 1. 14.
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쥘리앙 부이수 저 ㅣ 버티고) 비닐봉지처럼 여유롭고, 가볍게 떨어지기 이 책은 블로그 지인이 '운명의 가혹을 말하는 가장 우아한 형식'이라며 '강력 추천'한 덕에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다면 일본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실제로 하루키나 이사카 코타로, 또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속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것도 같은 '기시감'을 주는 작품이다. 20세기에 갖다 놓아도, 21세기에 있어도 어디서든 어색하지 않아서, 좋게 말하자면, 그 보편적인 정서 덕에 아주 잘 '스며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2003년 파리의 '혹독한 폭염'이나 '자본주의의 냉정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돈 한 푼 없이 '예술'하고 있는 저자의 삶이 마치 '.. 2007. 6. 3.
살인자의 건강법 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 노통 지음 ㅣ 문학세계사) “살인자의 건강법”은 연극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등장인물은 총 6명. 늙고 비만한 소설가 프레텍스타 타슈와 5명의 기자만 있으면 된다. 기자 중 먼저 등장하는 4명은 동일인물이 맡아도 상관 없고. 무대에는 단 두 사람만 등장하면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속사포 같은 대화에 빠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감동적인 연극이 될 것이다. 주인공 프레텍스타 타슈는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병이다)에 걸려 두 달 후면 죽게된다는 80대 노인으로, 스물 두 권의 책을 내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문학계 거장이다. 그의 사망 선고가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몰려들고, 매니저에 의해 선발된 몇 명의 기자가 .. 2006. 1. 4.
앙테크리스타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ㅣ 문학세계사)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아멜리 노통의 소설에 늘 등장하는 ‘적’과 ‘나’의 관계는 “앙테크리스타”에서도 나타나 여전히 풀기 힘든 메시지를 던져준다. 열 여섯 소녀들을 통해 전개되는 사건. 쉽고 재밌게, 술술 잘 읽히기 때문에 급하게 읽다가 결국은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주의를 기울이자.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나’(결코 ‘선’이라고는 할 수 없는)와 적(‘악’으로 볼 수 있다)의 대립으로 시작하는 그녀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 이런 몹쓸 인간이 있지”하는 공감을 선사하지만, 절정으로 치닫게 되면 “하지만, 이렇게까지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심하고 고독한 블랑슈와 매력적이지만 거짓으로 무장한 앙테크리스타의 .. 2005. 9. 9.
포옹 포옹 (필립 빌랭 저 | 문학동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 대부분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 것이다. “단순한 열정”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작가가 자신의 절절한 심정을 토로한 소설로, 사랑의 열정과 집착, 광기 따위를 여과 없이 그려내 조금은 민망하고 어색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동조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단순한 열정”은 작품 이외의 것에서 화제를 남겼는데, 그 소설을 읽은 한 젊은이(서른 세 살이나 어린!)가 그녀와 사랑에 빠져 “단순한 열정”을 그대로 답습한 또 하나의 문제작을 내 놓은 것. 그게 바로 “포옹”이다. 아니 에르노는 A라는 유부남을 사랑하여 “단순한 열정”을 썼고,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를 사랑하여 “단순한 열정”을 모방한 “포옹”을 썼다. 그러니 “단순.. 2004.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