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소설
기다림
mariannne
2011. 5. 23. 19:00
기다림 (원제 : Waiting)
하 진 지음/김연수 역 | 시공사
1963년 선양 시市의 육군의학교 시절, 고향에 있는 양친의 간청으로 얼굴도 모르는 여자 류수위와 결혼하게 된 쿵린은 실제로 만나 본 그녀가 박색인데다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전족으로 발 길이가 10센티미터라는 사실에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몇 년 되지 않아 아이를 하나 낳은 후부터는 아예 근무지인 무지 시의 육군병원에서 일 년 내내 지내다가 여름 휴가철 일주일만 시골 집에 내려갈 뿐이고, 그때에도 아내와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 같은 근무지의 간호사 우만나와 정이 들면서부터는 여름 휴가철마다 아내 류수위를 데리고 시골 인민법원으로 가 이혼을 청원하는데, 그때마다 번번히 기각 당하길 십 수 년. 우만나는 쿵린을 기다리다 늙어 마흔을 넘었고, 혼외정사가 발각될 시 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을 두려워한 그들은 오랜 시간을 정신적 동지로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육군병원에는 '부부가 18년 동안 별거가 계속될 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혼이 가능하다'는 규칙이 있었고, 쿵린과 우만나는 이제 그 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께스는 51년 9개월 4일을 기다려야 하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썼지만 쿵린의 18년 기다림이 그보다 못할 게 뭘까. 드디어 1984년, 18년간 별거한 부부의 이혼이 자연스럽게 성사(!)되었고, 쿵린은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처 류수위와 딸 화를 무지 시로 데려와 일자리를 얻어주고, 곧 이어 우만나와 재혼을 한다. 그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는 눈물겹도록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인생이란 누군가의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고,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니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까?
영어로 소설을 쓰는 중국계 소설가 하진의 문장은 매력적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스무살 넘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의 실력이 놀랍기만 하고, 귀화한 박노자가 우리말로 쓴 글을 읽었을 때처럼 감탄스러웠다. 소설가 김연수 씨의 번역이라는 사실에도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