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mariannne
2005. 5. 8. 18:20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민음사)
2004년 10월 26일,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십 년 만에 새 작품을 선보인다고 하여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온 세계)가 들썩였단다. “공식적으로 배포되기 일주일 전에 최종 교정본을 복사한 해적판이 보고타 시내에 출연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확고부동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다빈치 코드』를 순식간에 밀어냈”다는 소설. 아흔 살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과 그가 기억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다.
아흔이라는 나이는 어떤 것일까. 늙는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 한다. 주인공은 “우리를 용도폐기된 존재로 여기는 젊은 여자 친구들이 도발적인 말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것”(p62)이라 생각한다. 그런 아흔의 할아버지가 열 넷의 순진한 소녀를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다. 불 같은 질투도 느끼고, 흥분하여 이성을 잃기도 한다. 마르께스는 늘 이런 식이지. 몇 세대를 거쳐가는 아득한 세월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도 그렇고 53년 7개월 11일을 기다리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그렇다. 우리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세월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군… 독자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의 연륜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 마르께스의 올해 나이는 78세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 나온 그의 단편들에서 보여준 놀라운 유우머 감각이나 장편들에 담긴 감당하기 힘든 무게들은 사라졌고, 왠지 모를 서글픔만 남았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세 번쯤 읽어야 비로소 그의 뜻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르께스의 소설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추천작에 올리고 싶다.
책 속 구절 :
무자비하게 떠오르는 잠든 델가디나의 모습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아무런 악의도 없이 일요 칼럼의 정신을 바꾸었다. 일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그녀를 위해 글을 쓰면서 그녀를 위해 웃고 울었으며, 단어를 하나씩 적어 나갈 때마다 내 인생도 흘러갔다. 평생토록 고수해 왔던 전통적인 만평 형식 대신에 연애편지 형식의 칼럼을 써서, 어떤 독자라도 그걸 자신의 연애편지로 만들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내 글을 라이노타이프 서체로만 인쇄하지 말고 멋들어진 필기체로 써달라고 신문사에 요청했다. 물론 편집장은 그것을 늙은이의 허영심이 불러일으킨 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장은 한마디로 그를 설득시켰다. 그 말은 아직까지도 편집부 사무실 구석 구석을 떠돌고 있다.
“착각하지 마시오. 유순한 광인이 미래를 앞서 나가는 법이오.”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