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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비소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by mariannne 2013. 6. 9.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은이) | 달 | 2013-04-18


그동안 나온 김경 씨의 책은 다 읽었고, 그만큼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김경의 트렌드vs클래식)을 읽으면서 시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글들을 묶어 낸 듯한 이번 에세이를 하마터면 안 살 뻔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책을 구입했다. 역시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칼럼은 요약의 요약 버전 정도였던 것이다.

글발 좋은 작가라 뭐든 윤색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책의 첫 번째 섹션이 “love”이고 첫 글이 “결혼해도 괜찮아”라는 건 특히 의미심장한데, 작가 나이 스물네 살 무렵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어떤 남자에게든 적어도 재앙이 되진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 남자에게 나와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식의 부양의무 같은 걸 지우고 싶지 않았다”(p.13)고 생각했고, “결혼, 그건 아마 멀미 나는 속물근성을 대표하며, 한창 인기몰이중인 지옥의 기계”라고 생각하면서, 남들이 결혼할 때 “얼씨구, 또 결혼하는구나. 절대 안 부럽다. 결혼, 그딴 건 실은 통렬한 고뇌의 세계, 너희가 사랑 그 약발의 힘으로도 어쩔 도리 없는 신음의 무도회 같은 거다.”(p.15)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마흔 다 되어 결혼할 운명의 남자를 만난 후 “결혼식이란 각각의 고립, 그 진공상태에서 벗어나 서로 의존하며 공존하겠다고 선언한 연인들을 응원하고 확고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그들에게 일종의 책임감을 덧씌우는 자리라는 걸” (p.17)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지만, 이렇게 뭐든 그 이유를 그럴듯하게 쓸 수 있는 솜씨, 정말 감탄할만하다. 그렇다. 그녀는 이제 결혼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녀가 어린시절부터 이현세의 까치 대신 고행석의 구영탄을 좋아했고, '어딘가 가난한 구석이 있는', 이를테면 '지질이, 가난뱅이, 순딩이, 모지리, 푼수, 말라깽이'같은 남자만 좋아하다가 드디어 그 정점을 찍을만한 화가 남편을 만나 "이 신비로운 바보가 그 특유의 어리숙함으로 앞으로 날 얼마나 즐겁게 해줄지"(p.56) 기대하는 그 감동에서 나온 것이다.

 

17년간 패션지 피처기자로 일한 그녀가 말하는 '취향'이라는 거, 마음에 든다. 우리를 타인과 다르게 만드는 그것. 그녀의 '취향'은 이렇다. 언젠가 공황장애로 고속도로에서 패닉상태를 겪은 후 그대신 국도로 다니게 된 것, 밝은 형광등에 질색하며 촛불을 켜고, 언젠가 직접 집을 지어 살겠다는 것이다. 도시 생활 대신 소박하게 먹고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고 싶은 것,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옷을 입고 싶은 것, 끝내 인터뷰하지 못한 피나 바우쉬,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수전 손택, 재미있고 수수께끼같지만 '왠지 더럽게 슬픈'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같은 사람들...  

의외인 건, 그녀의 성형 수술이다. 턱 수술이나 영구 필러를 권한 의사 대신 “굳이 턱 수술은 안해도 되고, 대신 코를 높이고,  턱과 이마, 볼에 자가지방을 이식하면 더 어려보이겠다”고 한 장인(匠人) 같은 의사에게 얼굴을 맡긴 후, “[…] 나는 줄곧 좀 꾀죄죄한 쪽으로 흐르는 나만의 보헤미안, 그런지grunge 스타일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아름답고 싶었다. 아니 적어도 갑자기 폭삭 늙은 것처럼 느껴지는 얼굴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직 내 짝을 못 만난 상황에서 그런 비루함은 내 정신 건강에 아주 해롭다. 나는 그 절망감을 교정하기 위해서 기꺼이 수술대에 올랐고 그런 점에서 나는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p.107)고 말하다니,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또 생각을 고쳐먹었다. 뭐 어때. 그녀의 취향인걸.


책 속 구절: 

음악은 내게도 중요한 영역이다. 일상이 아무리 비참해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삶은 참을 만한 것이 되고 심지어 심란한 육체를 초월해 영혼이 기뻐하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종의 속물근성이거나 허영심의 발로 같은 못된 버릇일 수도 있는데, 음악 듣기에 대한 취향이 나와 맞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p.51)

 

그 이후로도 여러 시인을 좋아했다. 기형도, 이성복, 허수경, 황인숙 등의 시를 읽으며 내 청춘의 어두운 시절을 보냈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연민을 품은 채 개인적인 슬픔이나 설움, 상처 같은 것에는 제법 의젓하게 대처하는, 아니 적어도 그런 척하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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