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 열린책들
450페이지의 묵직한 책이지만 읽다 보면 책 무게만큼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간 세 남자의 이야기가 놀랍고, 환상적이고, 흥미롭다.
M.S. 포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자라다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는 외삼촌과 함께 지낸다. 외삼촌마저 객지에서 사망하자 그는 가난의 극한을 경험하는데, 키티 우라는 중국계 여성 덕분에 다시금 의욕을 찾고, 여든이 넘은 토마스 에핑(줄리안 바버였던 사나이)의 말벗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괴팍한 장님 노인 에핑은 일찍이 줄리안 바버였던 시절에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동굴에 처박혀 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 며칠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를 포그에게 전달한 후 에핑은 자신이 예측한 날짜에 숨을 거두고, 포그는 에핑의 아들임이 분명한 솔로몬 바버를 만나 이 사실을 전한다. 솔로몬 바버로 말할 것 같으면 극단적인 비만의 독신남. 그의 과거는 또 우연히 포그와 맞닿아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 정도.
“태양은 과거고 지구는 현재며, 달은 미래다.” - 이건 이 책에 여러 번 나오는 문장이다. “달의 궁전”이라는 레스토랑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포그는 3대에 걸친 가족 연대기에서 ‘미래’를 상징하는 ‘달’이기도 하다. 토마스 에핑이 포그에게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가 한 시간 동안 보라고 한 블레이크록의 “Moonlight”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림인데, 책을 읽고나서 보니 굉장한 그림같기도... 포그는 이지러졌다가도 다시 차오르는 달이 될 것인가? 태양과 지구의 '미래'인 그 달?
Moonlight, Ralph Albert Blakelock
http://www.brooklynmuseum.org/opencollection/objects/697/Moonlight
에핑은 내게 자기가 미쳤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어느 정도까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의 말로는 바이런이 죽은 뒤 사흘동안 거의 내내 소리를 지르고 손에서 배어나오는 피 – 손이 바위에 찢긴 탓으로 – 를 얼굴에 문질렀다고 했는데, 그가 처했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그런 행동이 이상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나 역시 센트럴 파크에서 폭풍우가 치던 밤 동안 그렇게 소리를 질렀으니까. 더군다나 내 상황은 그에 비한다면 훨씬 덜 절망적이었다. 누구든 자기가 속수무책인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끼면 고함을 지르고 싶어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가슴에 응어리가 지면 그것을 몰아내지 않고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숨에 숨이 막힐 것이고, 대기 그 자체가 그를 질식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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