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 원제 A Long Way Down (2005)
닉 혼비 지음 | 문학사상사
12월 31일, 고층 아파트 토퍼스 하우스 옥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죽고 싶은 사연이 있다. 유명 방송인이면서 10대 소녀와의 스캔들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은 마틴, 중증 장애아인 아들 때문에 평생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미혼모 모린, 유명 정치가의 딸이지만 집안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은 제스, 꿈과 여자친구를 한꺼번에 읽게 된 제이제이는 자살을 실행하지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오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와 친구를 얻게 된다...는 교훈적인 결론이다. '대담하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와 면도날 같은 위트'라는 소설보다 더 멋진 홍보 문구와 생전 책 한 권 안 읽는 친구의 "나같은 애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는 추천사에 넘어가서 읽긴 했지만, ... 낯설다.
책 속 구절 :
사실 포크너랑 디킨스를 읽긴 해도, 내가 피자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 멍청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최소한 학력은 제일 낮을 것이다. 우리 피자집에는 아프리카에서 의사였던 사람들, 알바니아에서 변호사였던 사람들과 이라크에서 화학자였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다(우리 사회에 피자와 관련된 범죄가 더 많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생각해보라. 내가 만약에 뭐, 짐바브웨에서 최고로 권위 있던 뇌수술 전문의인지 뭔지 그랬는데, 파시스트 정권한테 쫓겨나서 영국에 왔더니 약에 절어 지내는 10대 개자식한테 야식을 배달해 주며 새벽 3시에 굽실거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놈의 턱뼈를 부숴놔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어쨌든 패배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패배하는 데는 분명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러니 내가 피자 배달을 하고 있었던 것은, 영국이 후지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영국 여자들이 후지고, 영국인이 아니라서 합법적으로 취직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고, 스페인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엿 같은 핀란드 사람도 아니니까.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가 거기였다. (p.43~44)
그래서 모린, 제스, 마틴 샤프가 빈센트 반 고호를 따라 이 세상을 벗어나려는 참이라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아, 물론 나도 빈센트가 북부 런던의 아파트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다). 누구네 집 파출부처럼 생긴 중년 부인과 소리를 질러대는 실성한 10대, 얼굴이 벌건 토크쇼 호스트……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살이란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나 천재 가수 닉 드레이크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자살이란 이지적인 것이어야 했다. (p.46)
나는 펍에서 레몬을 넣은 진을 마시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한잔 살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대타 선수이니 자신들이 술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 술 때문에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날 저녁이 지나자 나는 3월 31일에 모두 만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그런 느낌, 이제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 나는 가급적 오랫동안 그 느낌을 꽉 붙잡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p.359)
그곳, 내가 12월 31일에 올라갔던 그 곳에 올라가면, 옥상 위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 건너 100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다는 없다. 거의 모두 다 마른 땅 위에서,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행복이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뭐 그런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내 말은,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살과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실에서 지금처럼 위로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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