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저 | 소담출판사)
“단편집이긴 하지만 온갖 과자를 섞어놓은 과자 상자가 아니라, 사탕 한 주머니입니다. 색깔이나 맛은 달라도, 성분은 같고 크기도 모양도 비슷비슷합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단편집에 실린 열 두 편 소설은 느낌이 아주 비슷하고, 주인공들은 모두 조금씩 닮아 있다. ‘만남의 시기가 끝나’버린 사람들, 사랑을 잃어버리거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 무언가 감정적으로 결여된 상태, 하지만 발버둥 치지도, 발악을 하지도, 미련이나 집착에 사로 잡히지도 않는다. 단지 ‘울 준비는 되어 있’을 뿐.
이 소설이 왜 인기가 있는 것일까. “냉정과 열정사이”의 여파? 아니, 그것과는 또 다른 뭔가가 있다. 주인공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삼십 대, 혹은 사십 대 인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젊은 독자들이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강물만큼의 깊이와 여운을 남겼기 때문일까. 남편이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동성을 사랑해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가 버린 연인을 사랑해도 괜/찮/다. 그런 사람들도 우리 모두처럼 일상을 살아 가고 있다. 밥을 먹고, 회사에 나가고, 쇼핑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책 속 구절 :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 배는 저주했다. 저주하면서, 그러나 아직은 어린 나츠키가 언젠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면, 더 강해 주기를 기도했다. 여행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한껏 사랑받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를 기도했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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